기독교에 들어온 이교주의를 아십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이 일요일 예배의 근거라고 하지만 성경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논증입니다. 신약 성경에 새로운 제도인 성만찬, 침례, 세족예식에 관하여 명백한 명령이 있다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매주 일요일, 매년 부활절을 기념하라는 말씀이 전혀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부활을 성만찬과 연관하여 일요일의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데, 성만찬은 부활의 기념이 아니라,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고전 11:26)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은 성만찬으로 기념하듯, 부활은 침례로 기념하도록 성경에 명시되어 있습니다(벧전 3:21; 롬 6:5). 이상의 몇 이유들을 보더라도 일요일 준수가 부활에 기초했다는 논증은 성경적인 것도 아니고 역사적인 것도 아니며 논리적인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근거가 있을까? 일요일 예배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없으므로, 그 기원은 역사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일요일 예배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나 부활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 공회 - 서기 49년경
사도 바울의 선교로 야기된 교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소집된 제1차 그리스도교 세계총회격인 예루살렘 회의의 결의 사항을 보면,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장애가 된 할례 같은 의식들은 폐지하기로 결의했어도 안식일 준수 여부는 처음부터 문제로도 거론되지 않았습니다(행 15장).
예루살렘 멸망 - 서기 70년
예루살렘에서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 24:20)는 예수님의 권고에 따라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요단동편 펠라(Pella)지방에 정착했다는 사실을 4세기 역사가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315-430)는 기록하면서, 예루살렘 멸망 이후 오랫동안 안식일을 준수했음을 확인 시켜 주고 있습니다(Epiphanius, Adversus Haereses 29. 7, PG 41:401).
바르 코케바(Simeon-Kokeba) 반란 - 서기 132년 이후
서기 132년 로마의 하드리아누스(Hadrian, A.D. 117~138) 황제는 속국들과의 화친 정책으로 반란이 심하던 유대인들의 소원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허가해 주었습니다. 랍비 아퀴바의 호소로 막대한 건축자금이 모이고 있을 즈음, 황제는 모든 속국들에게 자신을 신의 아들로 부르도록 하는 황제 숭배를 강요했고 특별히 예루살렘에 로마의 주피터(Jupiter) 신전 건립을 추진하였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몹시 반발하여 성전건축 자금이 반란 자금으로 사용되었고, 바르 코케바가 주동이 되어 일으킨 대 반란은 안식일 역사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황제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로마의 명장 세베리우스와 정예부대 22군단을 파견하였으나 전쟁에 능한 유대인들은 로마군대를 ‘엥케리’ 골짜기로 유인한 후 전멸시켜버렸습니다. 이에 분노한 로마는 유대인 마을 985개를 초토화시켰으며 약 80만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135년까지 3년간 계속된 이 반란으로 예루살렘은 다시 한 번 폐허가 되었고 유대인은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축출되어 출입조차 금해졌습니다. 로마 군인들의 인명 피해도 막심하여 원로원에 보내온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서한에도, “나와 그 군대들은 강건하도다”라는 공식적인 문구가 생략될 정도였습니다(Dio Cassius, Historia Romana, 69, 13).
유대인들에 대한 로마인들의 증오는 극에 달하였으며 유대교를 불법화하고
① 토라(모세오경) 금지
② 할례 금지
③ 안식일 예배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이 세 가지 금지령을 어기면 사형으로 다스렸는데, 이런 상황에서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초기의 그리스도교가 유대교로 오인되어, 무고한 증오와 핍박의 대상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황이 극도로 악화된 이러한 여건에서 취할 수 있었던 자구책은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다르다는 것을 변증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의식하고 나선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교 지식인들이 2세기에 대량으로 출현한 변증 교부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황제는 이를 무시하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았고, 박해는 여전히 계속되었으며, 결국 교회 내부에 다음과 같은 분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① 안식일을 계속 지키려는 무리들
②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려는 무리들
③ 두 날을 모두 지키는 무리들
이러한 배경에 의해서 일요일에 예배드리는 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일요일 예배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서기 150년경에 가서야 문서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부활절
혹시 내년 부활절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부활절이 해마다 바뀌기 때문인데, 그 날짜는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요? 부활절은 춘분(春分)이 지난 후 첫 보름달이 뜬 다음 일요일입니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 하필이면 이교의 동지축제와 춘분축제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째서 예수님은 기가 막히게 동지 축제에 태어나고, 춘분 축제 때 부활했을까요? 놀랍게도 두 절기의 기원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종교에서 그 날짜를 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날 행하는 풍습까지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성력(聖曆) 1월(니산, Nisan) 14일 곧 유월절(諭越節, Passover)을 그리스도의 수난 기념과 무교절의 영적 의미를(고전 5:6-8) 새 언약에 연관시켜 오랫동안 준수해 왔습니다(고전 11:23~26). 그러나 유대인의 제1차 반란과(A.D 70) 제2차 반란(A.D 132~135) 이후 로마제국의 증오가 심각해지고 마침내는 유대교가 불법 종교가 되자 안식일 준수와 함께 이와 같은 수난 개념도 그리스도인을 유대인으로 오해시키는 구실이 되어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리하여 2세기 중엽에 이르러 1월 14일 수난 기념일 대신에 유월절 다음에 오는 일요일을 “부활절-일요일(Easter-Sunday)”로 날짜를 바꾸어 준수하려는 시도가 노골화되자 이를 반대하는 동방의 교회와 큰 충돌을 빚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른 바 “부활절-일요일 논쟁(Easter-Sunday Controversy)”입니다(Irenaeus, Litter to Victor in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v. 24. 2-17).
“부활절-일요일”을 반대한 편은 주로 사도 요한 이 죽기까지 봉사한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로서 요한의 제자로 순교자가 된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카프를(Polycrap, A.D 155) 비롯하여 에베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Po-lycrtes. A.D 130-196)등이 있었습니다.
논쟁은 계속되었으나 유대인에 대한 로마인들의 증오심 때문에 시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 로마 교회는 오랫동안 준수되어 온 안식일과 유월절 수난 기념일 대신 매주 “일요일”과 매년 “부활절-일요일”을 그리스도교의 예배일과 명절로 확립시키는 일을 쉽사리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321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Constantine)의 주재로 개최된 역사적인 니케아 종교회의(the Council of Nicaea)칙령에 포함된 감독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하여 동방에 있는 교회들도 유대인과 함께 하지 말고, 로마 교회와 같은 날을 부활절로 기념하라고 명령함으로써 오랜 “부활절-일요일” 논쟁에서 로마 교회가 승리했음을 공인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교의 최대 명절, 영어로는 “이스터” 독일어로는 “오스턴”으로 불리는 부활절의 진상은, 그 근원을 전혀 성경에 두고 있지 않음을 교부들의 기록과 “부활절-일요일” 논쟁 역사를 살펴보면 당장에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5세기의 교회역사가 소크라테스(Socrates)의 증언입니다.
“이스터(부활절) 축제가 준수되었다는 지적이 신약 성경이나 사도 교부들의 기록 어디에도 없다. 주님이나 그의 제자들이 이것(부활절)이나 다른 축제를 명하신 적이 없다. 이스터(부활절)도 많은 다른 관습이 그렇게 수렵된 것처럼 교회가 이교의 옛 용어를 바꾸어 영구하게 한 것으로 돌려진다”(The Encyclopedia Britannica, 11th ed.(1910), vol, VII, 828).
고대 앵글로 색슨족들이 봄의 여신으로 섬겨 온 “오스타라”(Ostara 혹은 Eostre)를 위하여 베풀어졌던 다산(多産)을 비는 봄의 축제가 “이스터” 입니다. 동쪽(Ost)에서 태어나 땅에 새 생명을 가져오는 봄의 태양을 상징하기도 한 이 여신은 “부활절 달걀”이나 “부활절 토끼”가 드러내듯 왕성한 생식과 다산을 상징합니다. 이 봄의 여신 “오스타라”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의 여신 아스다롯과(삿2:13 ; 10:6 ; 삼상7:3.4; 왕상11:5,33) 앗시리아와 바벨론의 여신인 “이슈타”(ishtar)와 같은 존재임이 밝혀졌습니다(The World Book Encydopedia(Chicago: World Book Inc., 1986) 787, 788).
부활절에 나누어 주는 달걀은 봄에 생명이 싹트는 부활과 다산을 상징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집트와 중근동의 춘분 축제 때 달걀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또 하늘에서 유프라데스 강으로 떨어진 거대한 달걀로부터 여신 아스타르테(Astarte-Easter)가 부화 되었다고도 합니다. 영국의 고대 드루이드교도(Druids)들은 달걀을 거룩한 상징으로 지니고 다녔으며, 로마 풍작의 여신 케레스(Ceres) 행렬에서는 달걀이 앞서갔습니다. 아테네에서는 박카스 제전이나 디오니시아카의 제전 때 달걀을 성별하여 바치는 종교행사가 거행되었습니다.
부활절-일요일 아침에 많은 교회들은 일출 예배를 연합으로 드립니다. 부활절-일요일 아침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기 때문에 그런 종교행사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일출 예배 모형은 고대 태양 숭배의 한 부분입니다. 에스겔 시대에 제사장들조차도 태양숭배에 빠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오 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겔 8:16). 엘리야 시대에 바알 선지자들이 바라보았던 곳도 역시 동쪽이었습니다. 이 바알 선지자들이 바알을 부르기 시작한 때는, 태양이 그 첫 모습을 동쪽 지평선 위로 나타낼 때, 즉 동틀 때였습니다(왕상18:26).
옥스퍼드 사전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리스도교의 부활절은 크리스마스처럼, 고대 이교의 축제를 대신한 것임이 분명한 것으로 여겨진다”(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4), 437).
크리스마스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의 최대 명절이 된 크리스마스 역시 일요일이나 부활절처럼 태양숭배와 연관된 조로아스터교와 미트라, 로마인들의 태양신을 맞이하는 축제일이었음이 이교의 고대 문헌에서 확인됩니다. 크리스마스의 근원이 된 이교의 절기는 라틴어로 “디에스 나탈리스 솔 리스 인비크티”(dies natalis solis invicti)였는데 그 뜻은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생일”이었습니다. 그날은 예수탄생 이전에도 동지축제와 수많은 메시아와 신들의 축제였습니다.
역사는 기록합니다. “동지(冬至)가 지난 후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정복할 수 없는 항성(태양)이 다시 흑암을 이길 때인 ‘새로운 태양’의 생일인 12월 25일을 축하 하도록 매우 일반적인 준수가 요청되었다”(Framz Cumont, Astrology amd Religion Among Greeks and Romans, 1960, 89, in Bacchiocchi, 257). 기독교가 헬레니즘문화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그들의 풍습을 하나 둘씩 흡수하면서 손쉽게 이방인들을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교도들이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용이 하도록 하기 위해, 그들이 이교의 축제에서 돌아서도록, 흑암의 정복자인 ‘무적(無敵)의 태양’ 미드라(Mithras)를 영광스럽게 하는 같은 날인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임시적인 생일로 제정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Mario Righetti, Storia Liturgica, II (Milano: Editrice Ancora, 1955), 67).
크리스마스 트리의 관습은 고대 이집트에서의 동지제(冬至祭) 때 나뭇가지를 장식하고, 로마의 동지제 행렬에서는 월계수 가지 장식을 들고 행렬을 했던 성목(聖木) 숭배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은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이교도들이었던 유럽인들 사이에서 성행하였던 나무숭배는 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도 존속하였는데, 마귀를 찾아내기 위해 신년에 집과 헛간을 전나무로 장식하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새들을 위해 나무를 세우는 스칸디나비아의 관습들을 통해 이어져 왔다”(The New Encyclopedia Britannica, Christmas Tree)
일요일 준수와 태양숭배
일요일 예배, 그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 부활 이후 안식일이 폐지되고 부활을 기념하여 지키기 시작했다고 하는 단순 논리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일요일 예배가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아 교회의 예배일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이교들과 로마의 황제들과 이교적 신학자들의 영향, 태양신과 관계, 그리고 엄청난 투쟁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 비성서적인 제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신봉하는 예수는 “의의 태양”(Sol Juvictus)이시므로 로마인들의 “불패의 태양”(Sol Invictus)인 미트라와 동신이명(同神異名)임을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논리가 교회의 일요일 예배를 합리화 혹은 정당화한 것입니다. 이들로부터 소위 일요일 신성론, 영혼불멸설 등이 발생되었고 나중에는 크리스마스 경축제와 마리아 숭배 등이 교회로 도입된 것입니다.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 - A.D 321
때마침 동서로 나뉘었던 로마제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콘스탄틴(Constantine) 황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the Edict of Milan)을 내려 종교 자유를 허용하는 극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잇달아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온갖 특전을 제공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더할 나위없는 환심을 사게 되었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황제는 321년 3월7일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칙령을 내립니다.
“존경스러운 이 태양의 날에 모든 판사들과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장사하는 모든 사람들, 은 휴업 하도록 하라 그러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이 마련해 준 혜택을 상실하지 않도록 씨를 뿌리거나 포도나무를 재배함에 있어 그토록 적절한 때가 없는 수가 있으므로 적기(適期)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 날에 완전히 자유롭게 농경(農耕)에 종사하도록 하라”(Codex of Justinian, lib. 3, tit. 12, leg. 3, in Pgil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3(New York: Scribner, 1902), 380).
콘스탄틴 황제가 휴업하도록 명령한 날의 대상인 “존경스러운 태양”은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라, 황제 자신을 포함한 로마 사람들이 섬겨 온 “무적의 태양”곧 “미트라”태양신 입니다.
콘스탄틴은 평생 태양 숭배자였고 그의 개종은 이름뿐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도 고대 희랍과 로마의 태양신인 아폴로(Apollo)를 높이기 위해 주화(鑄貨)를 만들어 냈으며 죽기까지 이교 태양신의 대제사장의 칭호인 “Pontifex Maximus”를 썼습니다. 이것이 교황의 칭호로도 유입되었지요. 그는 그리스도교와 이교를 동시에 유지하려는 정책을 썼는데 이러한 콘스탄틴 황제가 휴업하도록 명령한 날은 부활을 기념하는 그런 성일(聖日, holy day)이 아니라, 운동경기나 오락을 즐기는 세속적인 휴일(休日, holiday)에 불과했습니다(Kenneth S. Latourette, A History of Christianity(New York: Harpe & Brothers, 1953), 92, 93).
처음에는 불법 종교가 된 유대교와 구별되기 위하여 애쓰던 것이, 얼마 후 태양의 이름으로 휴식을 명령한 이교적인 정책을 교회 지도자들이 오히려 추진하고 환영한 까닭은 무엇일까? 313년 밀라노 칙령에 따라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고, 명목적인 개종을 거친 콘스탄틴 황제는 성직자들에게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면제하고 사법상의 특혜, 하사금 지급 등 엄청난 특권을 부여하고, 교회의 사유재산과 유증(遺贈)까지도 허락하는 등 정치적 배려가 깊어지자 그리스도교는 금세 현실에 눈이 어두 어진 퇴폐적인 정치 종교로 탈바꿈하고 말았습니다(J. L. Hurlbut, The Story of the Christian Church(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70), 60). 성직 매매가 시작되고, 성직 쟁탈을 위한 정치적 수단이 동원되어 366년 로마 교회 감독 다마수스(Damasus)를 선출할 때는 폭력배들이 동원되었고, 415년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성직에 나섰던 히파티아(Hypatia)가 폭력배에게 맞아 죽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기독교의 공식적인 일요일 준수
이와 같이 일요일 예배는 비성경적인 배경을 가지고 매우 인위적이면서도 이교적인 방법으로 교회에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되었고 마침내 교회에서도 일요일 예배를 합법화시키기 위한 몇 차례의 회의로 성경의 권위가 아닌 교회의 총회를 통해서 결의를 하게 됩니다.
◆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Nicaea)
태양의 날 일요일을 부활절로 성수 하도록 결의(Eusebius, Vita Constantini. Life of Constantine, bk. Ⅲ, chp. 17. in Frank H. yost, p.49).
◆ 343년 사르디카 회의(Sardika)
태양의 날 일요일을 ‘부활의 날’이란 미명 아래 일요일 신성론으로 부각시키면서 “주의 날(Lord's Day)”로 개칭하고, 교역자가 여행으로 “주의 날”을 세 번 범하면 제명시킬 것을 제11조에 명시하도록 의결(Charles Joseph Hefele, A History of the Christian Councils, Vol.2, Trans, and ed. by H. N. Oxenham. Edinburgh: T. and T. Clark, 1986. pp. 143-145. in Frank H. yost, p. 49).
◆ 364년 라오디게아 종교회의(Council of Laodicea)
일요일 준수가 마침내 공식적으로 인준. “그리스도인들은 유대 화하여 안식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하며, 그날에 반드시 일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날(일요일)을 특별히 존중히 여겨,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능하면 이 날에 일하지 말라. 그런데도 만일 그들이 유대화 한다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를 받을 것이다”(Synod of Laodicea, Canon 29, as translated in Nicene and Aante-Nicene Fathers(Graahd Rapids:1971). Second Serics, vol. 14, 148).
로마 황제 콘스탄틴은 이교와 그리스도교를 정치적으로 연합시키는 일을 위해 일요일을 활용하였고, 교회는 정치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일요일을 발판으로 회심하지 아니한 이교도들을 그리스도교에 입문(入門)시켜 마침내 중세기를 지배하는 로마 가톨릭의 입지를 확보한 것입니다. 이리하여 일요일에는 일하지 말라고 제안한 최초의 교부인 터툴리안(Tertu-llian)의 말과(Vincent J. Kellly, Forbidden Sunday and Fcast-Day Occupations(Washington: the Catholic Universiry of America Press, 1943), 203), 안식일에는 일하고 일요일에는 쉬라고 결의한 최초의 회의인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의 결의와, “존경스러운 태양의 날”에는 일하지 말라는 최초의 법인 콘스탄틴의 칙령을 따르기 위해 “제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니라”(출 20:11)고 이유까지 밝혀 말씀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유린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200년 이상 계속된 로마제국의 핍박을 “죽도록 충성”(계 2:10)함으로써 이긴 그리스도 교회는, 종교의 자유와 온갖 호의를 베풀면서 타협을 시도한 콘스탄틴 황제의 정책에 쉽사리 넘어간 것이며, 교회의 권위로 하나님의 계명을 대신한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처신에 불과한 것입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마 15:3,8,9).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