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on Church :: '외솔/네 손을 내밀라' 카테고리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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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믿고 가르치며 예슈아 마쉬아흐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
Yaacob

'외솔/네 손을 내밀라'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4.02.04 너희 믿음대로 되라
2014. 2. 4. 20:16 외솔/네 손을 내밀라

너희 믿음대로 되라 

"예슈아께서 거기서 떠나갈 새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슈아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 오거늘 예슈아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슈아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슈아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저희가 나가서 예슈아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 

(마 9:27-31).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로부터 감미로운 연풍이 솔솔 불어오는 아주 호젓하고 소담스런 도시였습니다. 때는 AD29년 가을, 흐드러지게 만발한 가을꽃들이 지나가는 길손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잠시 길을 멈추게 하는 명징한 날이었습니다. "한 푼 주십시오."  "한푼 주십시오." 길가에 쪼그리고 않은 두 소경이 마치 합창하듯 행인들에게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소경에는 선천성, 후천성, 외상성이 있습니다. 선천성은 신생아가 모체로부터 이미 눈이 멀어 나오는 것이고, 후천성은 백내장, 결핵, 매독, 임질, 그리고 각종 각막의 병 등으로 시신경이 죽고 망막에 손상을 받아 시력이 저하되는 것이며, 외상성은 수정체가 찔리든가 부딪혀 망막 출혈 등으로 결국 실명하게 된 경우입니다. 어떤 경우이든 소경은 사회적으로 냉대받고 소외를 당했습니다.
  

가버나움의 두 소경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불쌍한 시각 장애자들은 보지 못한다고 가족과 친척에게 버림받아 외롭게 길가에 나앉았으며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를 당하고 고초를 겪다가 이제는 어쩔 수없이 목숨만 근근이 연명해 가는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진 삶이란 항상 그렇듯이 절망만 하라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날 지나가는 사람이 희망찬 말을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보게 소경들, 예슈아께 가 보게. 그분은 모든 불치병, 난치병, 소경, 앉은뱅이, 귀머거리를 오직 말씀만으로 고친다네. 벌써 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다네." "여보시오, 그 무슨 소리요. 좀더 자세히 말해 주시오." 두 소경은 과객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으며 사라졌던 삶의 의욕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아! 참으로 놀라운 희소식이로다. 그토록 고대하던 마쉬아흐가 오셨는가보다. 우리도 그분에게 치유를 받으러 가야겠어."
  

소경들이 어릴 때부터 계속 들어온 마쉬아흐에 대한 성경 예언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사 29:18)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사 35:5)라는 말씀들입니다. 소경들은 예슈아께서 만일 소경을 보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귀머거리의 귀를 열어 듣게 하신다면 그분은 틀림없이 마쉬아흐일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만일 우리도 그분을 만날 수만 있다면 분명히 우리의 눈을 밝히 뜨게 해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벌떡 일어나며 중얼거렸습니다. "자, 가 보자 그분에게로."
  

소경들은 예슈아를 찾아 이곳 저곳 수소문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주님은 다른 지역으로 전도 여행을 가시고 가버나움에는 계시지 않는 게 아닌가! 그만 길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당장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데 실망하여 한숨 쉬며 탄식했습니다. "하필 이 때에 다른 곳으로 가시고 계시지 않다니.'"
  

이제는 그분이 가버나움에 돌아 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한 푼 주십시오", "한 푼 주십시오." 가버나움 길목에서는 두 소경의 구걸소리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전히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소경들은 저편에서 한 무리가 왁자지껄하며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호기심이 일어나 어떤 행인을 붙들고 물어보았습니다. "여보시오, 이게 무슨 소란이오?" "예끼, 이 바보 같은 걸인들아, 예슈아의 일행이라네."
  

그는 귀찰다는 듯 소경들에게 불쑥 내뱉고 총총히 지나가버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만 두 소경의 귀가 번쩍 뜨이며 잠자던 치유의 소망이 다시 깨어났습니다. "오! 그토록 기다리던 예슈아께서 지나가시다니! 천우신조야."
  

마치 눌려 있던 용수철이 갑자기 풀려 위로 치솟듯, 벌떡 일어난 소경들은 목청을 돋우어 간청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방히 여기소서."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거듭거듭 간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슈아께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곧장 길을 가시는 게 아닌가! 애가 탔습니다. 소경들은 고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자비를 간청하며 줄기차게 따라갔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이 따라오는 걸인들을 귀찮다는 듯이 그들을 쫓아내었습니다. "예끼, 소경들아 재수 없다. 저쪽으로 꺼져 버려."
  

그러나 두 소경은 치유받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끈질지게 따라갔으며 주님의 일행이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가자 그곳까지 따라 들어가 계속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실로 줄기찬 간청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자손이여" 라는 호칭은 소경들이 예슈아를 마쉬아흐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다윗의 혈통을 통해 태어날 마쉬아흐를 기다렸습니다. 소경들은 예슈아께서 바로 마쉬아흐라고 확신하고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부른 것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말은 마쉬아흐의 할 일을 그들이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소경들은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이기적으로 말하지 않고 두 소경이 합심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호소했습니다. 

 

예슈아께서 그들을 길에서 고치지 아니하신 것은 문맥적으로 볼 때 치유를 은밀히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소경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인내하신 것입니다.

             

예슈아께서 드디어 두 소경을 바라보시며 말을 건네셨습니다. "너희들이 나에게 고쳐 달라고 하는데, 정말로 내가 능히 이 일 할줄을 믿느냐?" 그제야 주님을 대면하는 특권을 얻은 두 소경은 너무나 감격에 차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그러하오이다." 주님께서는 내가 고쳐 주면 돈을 얼마나 줄 것이냐를 물으시거나 내가 고쳐 주면 네가 나를 따라와 헌신하겠느냐를 묻지 아니하시고 단지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라고 물으시므로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슈아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이 있음을 보시고 치유의 

첫 단계로 소경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눈을 만지셨습니다. 참으로 부드러운 만짐이요 자비의 만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번째 단계 소경들에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치유를 선포하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바로 그 순간 주님의 능력이 그분의 손을 통해 소경들의 눈으로 들어갔습니다. 갑자기 전기적인 충격을 받은 소경들은 몸을 움찔하더니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직감했습니다. 눈동자를 덮었던 비늘 같은 것이 스르르 벗겨져 떨어져 나가고 눈이 환히 밝아 오더니 모든 사물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게 아닌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보인다, 보여." 아! 얼마나 기쁘고 감격적인 순간인가! 가슴이 터질 듯 감동적인 희열이 막 쏟아져 나왔습니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바로 그 두 눈에서 구슬 같은 감격의 눈물이 솟구쳐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모든 것이 그들의 믿음대로 됐습니다. 그 믿음이란 바로 마쉬아흐이신 예슈아께서 능히 고쳐 주실 것이라 믿었던 바로 그 믿음이었습니다. 고통과 멸시가 그들에게서 말끔히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 두 시각 장애자가 놀라운 신유를 체험하여 눈을 뜨게 된 것은 몇 가지 요인이 있었습니다. 맥을 짚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두 소경은 예슈아께서 다윗의 자손 곧 마쉬아흐임을 믿었습니다. 대부분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분을 마쉬아흐로 믿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 버림받은 두 소경은 예슈아를 성경에 약속되어졌고 또 그들이 열망하고 있던 마쉬아흐이심을 의심없이 믿었던 것입니다.

둘째, 예슈아께서 능히 자기들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슈아께서 두 소경을 고쳐 주시기 전에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라고 물으셨지요? 주님께서 왜 그렇게 물으셨을까요? 물론 두 소경에게 믿음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쉬아흐의 긍흘을 받으려는 자는 마쉬아흐의 능력을 긍정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 소경에게 낫고자 하는 간절한 갈망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환자가 삶의 의욕이 없고 생을 포기하는 마음을 가지면 병은 결코 낫지 않고 결국 죽고 맙니다. 누구든지 병든 몸을 고칠 의욕을 가져야 합니다. 지혜자는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잠 18:14)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두 소경은 꼭 눈을 뜨는 신유를 체험해야겠다는 각오와 간절한 갈망으로 주님께 간청한 것입니다.
   

셋째,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간청하였습니다. 비록 장애물이 많았다 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예슈아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끈덕지게 매달렸습니다. 두 소경은 길에서부터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계속 소리치며 베드로의 집에까지 쫓아 들어갔습니다. 비록 예슈아께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셔도 계속 간청했습니다. 그분의 침묵은 그들의 간절한 소망과 믿음을 일으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은 믿음의 활용 없이 기적 행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을 행사하므로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간구하다가 하나님께서 대답을 늦게 하신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계속 구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하는 것" (눅 18:1) 입니다. 믿음을 활용하여 끊임없이 간구해야 합니다.

   

두 소경은 합심하여 한 목소리로 예슈아께 간청했습니다. 간청하는데 연합하여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지혜자는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 4:11, 12)고 했습니다.

오늘의 기적을 살펴볼 때. 예슈아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안과 의사이심을 우리는 도무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빛이신 그분은 치유의 광선을 발하사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소경이 되게 허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요 그 눈을 여실 수 있는 분도 그분이십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출 4:11) 라고 했으며 ,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시 146:8) 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영적 소경이 아닐까요? 육신적으로도 눈뜬 장님이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경들도 점자로 성경을 읽고 은혜를 받는데 나 자신은 어떠냐 말입니다. 나 자신의 영적 눈멂을 깨닫고 부끄럽게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만일 주님께서 "내가 능히 이 일 할줄을 믿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우리 모두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아멘!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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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aac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