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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믿고 가르치며 예슈아 마쉬아흐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
Yaacob

'문둥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1.25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2014. 1. 25. 18:30 외솔/네 손을 내밀라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마가복음 1장 40절-45절

한 문둥병자가 예슈아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슈아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슈아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의학용어로 한센 씨 병(Hansen's disease)이라 일컫는 문둥병은 그 불치성과 전염성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무척 괄시받는 매우 흉칙한 병입니다. 오늘날 의학이 최고로 발달했다 할지라도 현대 인술로는 문둥병을 도저히 완치시킬 수 없으며 단지 초기 증세만 치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몸 속에 침투한 나병균은 세포 조직을 파괴하여 뺨, 눈썹, 코, 귀에 결절이 생기게 하고 관절을 녹여 손가락 발가락을 떨어져 나가게 합니다. 또한 신경을 죽이고 힘줄을 당겨 손가락을 오그라들게도 합니다. 아무리 용감한 사람일지라도, 진물나고 일그러진 문둥병자의 흉측한 몰골을 쳐다보면 십중팔구 공포로 떨게 됩니다. 어떤 나병환자에게 처음의 증세가 어떠했는가를 물어 보았더니 최초에 작은 반점이 피부에 생겼고 그것이 점점 썩어 고름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얼마 안되어 눈썹이 빠지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며 신경이 죽고 힘줄이 줄어들므로 손발이 오그라들더니 뭉쳐졌고 결국 전신이 비참하고 추악한 몰골로 변하더라고 했습니다. 나병은 참으로 무서운 불치의 병입니다.

 

성경 시대에 나병의 감식자는 제사장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나병 진단을 정확히 할 수 있도록 나병의 다양한 종류에 대해서 세세히 계시해 주셨습니다(레위기 13장 18절-46절). 먼저 종기에 의해 발생하는 나병에 대해서 "만약에 하얗게 돋아난 종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피부보다 우묵한 상태로 번지면 이것은 문둥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화상에 의해 발생하는 나병에 대해 "화상에 의해 덴 곳에 흰털이 나고 움푹 살이 패다가  온몸으로 번지면 그것이 화상의 상처에 의한 문둥병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옴에 의한 나병 발병은 "누구든지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머리나 턱에 생긴 상처 부위가 주위 피부보다 우묵하고 그곳의 털이 노랗게 가늘어지면 문둥병으로 판단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음으로 대머리에 생긴 문둥병은 "단순히 머리의 특정한 부분의 털이 빠지는 것을 넘어 빠진 머리털 부분에 불그스름한 반점이 발견될 경우 문둥병으로 판단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시대에 문둥이들은 거의 죽은 자로 여김을 받았기 때문에 산송장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만일 문둥병에 걸리면 천병 혹은 천형이라 하여 죄의 벌로 생각하고 저주했으며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감식자인 제사장으로부터 부정하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문둥이가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게 여겨졌습니다. 결국 가정과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홀로 성밖에 거주해야만 하였으며 그러다가 버림받은 문둥이들만의 사회로 가서 집단으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일단 문둥병에 걸리면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문둥이에 관한 율법을 기록하기를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위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밖에 살지니라"(레위기 13장 45절,46절)고 했습니다.

 

만약 문둥이가 사회에 나오게 될 때에는 이 율법에 따라 멀리서 사람이 오는 인기척만나도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슬픈 음조로 목청껏 소리질러야만 했습니다. 그런 애절한 절규가 들릴 때는 누구든지 몸을 떨며 피신했습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과 성벽이 있는 도시에 들어오는 것은 절대로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실로 문둥이들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 냉대와 고통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참담한 생애를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도 문둥이에 대한 생각은 성경시대와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문둥병에 걸리면 가정과 친척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버림받고 외딴 곳에 격리되어 생활해야만 합니다. 진성 나환자들은 소록도에 격리되어 생활하며 음성 나환자들은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는데 전국에 수십개의 마을이 있습니다. 과거 문둥이들에게 선거권이 없던 시절이 있었으며, 버스 운전기사는 그들을 태워 주지도 않았고 기차역에서는 그들에게 기차표도 팔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실로 그들은 살았으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생애를 살았던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간을 빼 먹으면 문둥병이 낫는다는 설화 때문에 실제로 문둥이가 아기를 훔쳐 잡아먹는 예가 더러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더욱더 소외되었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1936년 이러한 관행을 빙자하여 "시인부락"이라는 책의 창간호에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예슈아 당시 치명적인 문둥병에 걸려 가족과 친척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완전히 격리되어 외롭게 생활하던 한 문둥이가 있었습니다. 손가락과 발가락 관절이 나균에 의해 녹아 하나하나 떨어져 나갔으며 눈썹은 빠져 다 없어졌고 얼굴은 결절돼 찌그러졌습니다. 자신의 흉한 몰골을 보며 썩어 가는 지체를 만질 때마다 문둥병의 불치성에 몸을 떨며 한없이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그러나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는 법이라는 말대로 절망 속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이 문둥이는 어느 날 희한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슈아라고 하는 분이 저 갈릴리 지방에 다니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온갖 병자를 다 고치는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고 뛰게 하였으며 심지어는 죽은 사람까지도 살리셨다는 희소식이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문둥이의 마음에 그야말로 한 가닥 희망이 햇살처럼 밝게 떠올랐습니다. "만일 나도 예슈아께 가서 치유를 호소하면 틀림없이 문둥병을 고쳐 주실 것이다."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문둥병은 거의 나을 수 없는 불치의 병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희귀한 믿음이었습니다. 의사나 가족 그리고 허다한 사람들이 문둥이를 하나님으로부터 심판 받은 자로 저주하고 자기들에게 접근도 하지 말라고 내쫓아 버리던 시대에 "내가 만일 예슈아께 가면 그분은 결코 나를 쫓아내지 아니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슈아께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도 그냥 거절당한 일이 없었다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둥이에게 치유의 소망이 솟았고 결국 예슈아를 찾아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곳 저곳 수소문해 보니 주님은 아름다운 갈릴리 호숫가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도저히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둥이가 보통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접근하기란 그 당시의 사회적 제약이나 율법으로 볼 때 참으로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그렇다고 치유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후 마치 공비가 추격병을 피하여 도망다니듯 예슈아께 접근하기 위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산길을 이리 돌고 저리 돌아 호숫가로 나아갔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니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슈아를 둘러싸고 정신없이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헤치고 나가 예슈아 앞에 치병의 소원을 아뢸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불가능한 일같아 보였습니다. 예슈아께서 자기에게로 나오는 절름발이를 고치시고 소경을 보게 하며 중풍병자를 완치시키시고 계셨습니다. 다 죽어가던 자들이 예슈아의 안수하심으로 완쾌되어 기뻐 돌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문둥이의 마음에도 치유에 대한 강한 욕구가 일어났으며 자기도 예슈아께 나가면 결코 거절당하지 아니하고 치유받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실로 하늘이 준 천금 같은 기회였습니다.


"나도 주님 앞에 나아가 치유해 달라고 아뢰어야지."

그렇게 결심한 문둥이는 용감하게 군중 속을 걸어 헤쳐 나아갔습니다. 누군가 놀라 소리쳤습니다. 

"야 문둥이다."

문둥이의 참혹한 얼굴을 본 사람들은 무서워 피함으로 길이 열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예슈아께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돌을 던지는 자도 있었고 침을 뱉는 자도 있었습니다. 

"에끼, 이 더러운 놈 저리 꺼져."

"더럽다 퉤."


그러나 그 많은 저주와 방해가 오직 예슈아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가는 문둥이의 걸음을 멈추게할 수는 없었습니다. 조롱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아니하고 문둥이는 오직 힘차게 전진했으며 비난과 저주의 말도 괘념치 아니했습니다. 날아오는 돌을 맞으며 챔뱉음을 당하며 절박한 심정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그의 걸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문둥이는 예슈아께서 계시는 곳에 거의 왔을 때 있는 힘을 다해 마구 달려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간절하게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그는 그냥 고쳐 달라고 떼를 쓴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과 신적인 권위를 인정하여 치병을 그분의 뜻과 자비하심에 맡긴 것입니다. 꿇어 엎드린 것은 자기를 한없이 낮춘 최선의 겸손 표시였으며 이를 마태는 "절하고"(마태복음 8장 2절)라고 묘사했습니다. 문둥이는 돌에 맞아 피가 흐르는 채, 더러운 침이 몸 이곳 저곳에 묻은 채,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엎드려 절박한 심정으로 치유를 간구한 것입니다. 


문둥이만 나타났다면 전염될까바 욕을 하며 쫓아내고 저주를 퍼붓던 그런 시대에 예슈아께서는 진물나고 결절된 아주 흉측한 문둥이를 민망히 여기어 그분의 손을 내밀어 그에게 얹으시는 게 아닌가! 돌에 맞아 흐르는 얼굴의 피를 그분의 손으로 닦으시고 침 뱉음을 당해 만신창이가 된 문둥이를 위로하셨습니다. 오, 주님께서 산송장 취급받던 문둥이에게 그분의 깨끗한 손을 얹어 위로하시다니 얼마나 놀라운 사랑과 동정의 모습인가요! 그것은 문둥이를 취급하는 유대인의 관행을 완전히 파기하신 놀라운 행동이었습니다. 드디어 주님께서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치유를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 순간 문둥이에게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썩어 진물나던 살이 갑자기 정상으로 되고, 오그라들었던 신경이 살아 예민하게 되었으며, 뭉그러졌던 손과 발이 쭉 펴졌고, 결절됐던 얼굴이 펴져 해말갛게 되었으며, 썩은 종기들이 말끔히 없어졌고, 거친 비늘 모양의 피부가 건강미가 넘치는 불그스레한 색으로 변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신유의 역사였습니다. 그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소리쳤습니다. 

"야, 완전히 나았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문둥인 내가 고침을 받다니!"

예슈아께서 벅찬 감격에 찬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게 됐으니 성전에 가서 제사장에게 보이라."

"주여, 감사하나이다. ...아, 나는 온전하게 됐다."

기뻐 소리치며 주체할 수 없는 감격에 펄쩍펄쩍 뛰다가 주님 앞을 떠나갔습니다. 얼마나 활기찬 발걸음이었는지!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아픔을 겪은 다음의 감격스런 환희는 보통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정말로 황홀했을 것입니다. 제사장은 검사를 하고 그가 나은 것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고 기쁨이 충만하여 가정과 사회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문둥이가 기적의 고침을 받게 된 근본 동인이 무엇이었을까요? 다시 한 번 그가 고침 받은 방법을 잘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문둥이가 고침을 받을 수 있었던 제일 큰 이유는 그 당시의 환경과 상식을 초월한 긍정적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예슈아께서 자기를 능히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그 믿음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불치병인 문둥병을 주님은 능히 고칠 수 있다고 믿은 것은 그 당시 환경에서볼 때 참으로 기이한 믿음입니다. 오늘날도 주님은 무슨 병이든 치유해 주실 수 있다고 믿는 그런 긍정적인 믿음이 여전히 신유를 체험하게 되는 요인이 됩니다.


둘째, 문둥이는 마음에 믿는 것으로끝난 것이 아니라 행동에 옮겨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믿음을 행사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의사, 제사장, 랍비, 가족들뿐 아니라 주위의 허다한 사람들이 자기를 하나님께 재앙 받은 자로 저주하고 접근조차 하지 말라고 내쫓아 버렸지만 예슈아께서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아니할 것이며 반드시 자기를 고쳐 주실 것이라 믿고 그분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어떤 병에 걸렸든 주님께서 능히 고쳐 주신다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질 뿐 아니라 그 믿음을 실제로 활용하여 그분께 나아가면 치유의 은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셋째, 문둥이가 고침을 받을 수 잇었던 세 번째 이유는 갖은 모욕에도 불구하고 비장한 각오로 예슈아만 쳐다보고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문둥이가 믿음으로 군중을 헤치고 예슈아께 나아갈 때에 그를 보고 질색하는 자들이 저주하고 침을 뱉고 돌을 던져 내쫓으려고 했지만 문둥이는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았고 대항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예슈아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들의 싫어함과 질색함이 예슈아를 향한 문둥이의 걸음을 결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진정 신유의 복을 받기를 원하는 자들은 고침 받은 문둥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예슈아만 쳐다보고 전진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앙을 반대하고 욕하는 자들을 거들떠보지도 말고 오직 예슈아만 바라보고 나아갈 때에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넷째, 치유를 받은 네 번째 이유는 자신을 완전히 굴복하여 주님을 신뢰하는 간구를 했기 때문입니다. 문둥이는 주님께 꿇어 엎드려 겸손하게 자신을 의탁하며 병낫기를 주님의 뜻에 맡겨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방법대로 해결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한대로 응답되지 않더라도 주님의 뜻대로 될 것이기 때문에 결코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치명적인 문둥병은 죄를 상징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영적인 문둥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기심, 탐욕, 교만, 질투의 문둥병에 걸린 영적 환자들 말입니다. 이런 영적 불치병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기 때문에 신유를 체험하기 위해 모두 성경의 문둥이처럼 예슈아께서 능히 고쳐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그분에게 나가기로 결심할 뿐 아니라 실제로 주님께 엎드려 자신을 의탁하고 치유를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죄의 문둥병도 능히 없이해 주실 것입니다.


나는 오늘 참혹한 문둥이를 배려 깊게 취급하신 예슈아의 모습에서 진한 감동을 받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 율법에 의하면 누구든지 문둥이에게서 네 규빗 이상 떨어져야 했습니다. 이를 무시하고 가까이 가면 불결죄에 걸렸습니다. 만일 바람이 문둥이가 서 있는 쪽에서 불어온다면 적어도 100규빗은 떨어져 있어야만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문둥이가 집안에 얼굴을 들이밀기만 해도 그 집 대들보까지 더러워진다고 믿었습니다. 랍비들은 심지어 문둥이가 지나간 거리에서 팔고 있는 달걀까지도 사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둥이가 나타났다면 모든 사람들은 욕을 하고 저주를 하며 돌을 던져 내쫓았고 전염될까봐 급히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예슈아께서는 썩어 냄새나고 이곳 저곳 진물나는 문둥이를 불쌍히 여겨 그분의 손을 내밀어 얹으셨습니다. 아! 얼마나 놀라운 율법을 초월하신 행동입니까? 문둥이를 향하신 긍휼과 동정심을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쏟고 계십니다. 성경에 예슈아께서 손을 대고 치유하신 경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열병에 걸려 고통 중에 신음하던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만져 치유하셨고, 소경을 보고 민망히 여겨 눈을 만져 치유해 주셨으며 칼에 베인 말고의 귀를 만져 낫게 하셨습니다. 신체적 접촉으로 치유의 능력이 주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도 비록 주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소외를 당한 자라 할지라도 일단 예슈아께 나아가면 그분은 환영해 주시고 기꺼이 받아 주십니다. 마치 문둥이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분의 손을 대시고 용기와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나는 종종 "목사님, 나와 같은 사람도 주님께서 받아 주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사실 지난날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했든지 또는 지금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든지를 막론하고 일단 주님께 나아가는 자는 누구든지 받아 주십니다. 


성경에 보면 예슈아께 나아가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 중에 거절당하여 그냥 돌아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예슈아께 나아가 굴복하여 자신을 의탁하며 소원을 아뢰기만 하면 그분께서는 결코 거절하지 아니하시고 그분의 뜻대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장 37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따돌림받는 자를 향해 손을 내밀어 악수하고 버림 받는 자들의 손을 잡아 주는 것은 전적으로 예슈아의 정신인 것입니다. 우리도 예슈아를 닮아 병들어 버림받았거나 소외된 외로운 자에게 따뜻한 손길을 펴야 하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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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aac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