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양식을 포기한 충성
아합 왕을 선두로 온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져 국가적으로 하나님께 배도했을 때에 하나님을 위하여 담대하게 홀로 우뚝 섰던 엘리야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건재하도록 뒤에서 선지자를 후원한 한 사람의 충성이 있었기에 그 일이 가능했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충성스런 사람은 바로 이방 여인 사르밧 과부였습니다.
엘리야의 피신
이세벨의 영향으로 아합과 온 이스라엘은 바알 숭배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그들은 모든것을 공급하시는 생명과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우상 숭배의 배도로부터 돌이키기 위해 일어선 엘리야는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가뭄과 주림과 기근으로 인간과 짐승이 고통을 당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악한 왕후 이세벨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신실하고 무죄한 엘리야는 악한 이세벨의 공격을 피하고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피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한동안 그릿 시내 곁에 있는 산중에 숨어 여러 달 동안 기적적으로 하늘로부터 음식을 공급받았습니다. 그 후 계속된 한발로 시내가 마르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이방 나라에 가서 피할 곳을 찾도록 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에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왕상 17:9).
택하심을 입은 이방 여인
이 사르밧 과부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지요? 그녀는 하나님의 선민이 누리는 특권과 축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 땅에 엘리야를 위하여 안전한 곳이 없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안전하게 피신하게 하시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보살피고 보호하기 위해 택함을 입은 사람이 바로 이 사르밧 과부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배도했을지라도 아직 숨어있는 신실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이방 나라에도 소문과 이스라엘의 역사의 산 증거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그 진리에 대하여 듣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방의 악한 도시 시돈에 속한 사르밧의 이방 여인이 하나님의 선지자가 안전하게 피신할 장소와 공양할 사람으로 선택을 받았을까요? 이 여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자기에게 비춰진 작은 빛이지만 그 모든 빛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이었으며 너그럽고 남에게 희생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두로 가까이 있던 시돈은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로서 그 당시 상업과 무역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예술과 유흥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었던 시돈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로 유명한 곳이었고, 또한 무역으로 인해 각 나라의 소문과 정보가 빠른 곳이었지요. 아마 소문을 통해 이 여인은 최근에 임한 기근과 가뭄의 원인이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하나님께 배역함으로 오는 결과라는 사실을 들었을 것이며, 아울러 하나님의 경고를 담대하게 전했던 선지자 엘리야에 대해서도 들었을 것입니다. 이방 도시 시돈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혼잡한 바벨론처럼 혼잡한 이 세상을 표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안목으로 볼 때 하나님의 선지자가 접근하기가 어려워 보이고 전혀 안착할 수 없어 보이는 이방 지역 두로와 시돈, 그리고 이 시돈의 사르밧, 사렙다 지방이, 선지자가 안전하게 숨고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유일한 도시였습니다. 즉 선지자가 환영을 받은 곳은 이스라엘이 아닌 시돈이었던 것입니다.
최대의 시험
하나님께서 이 여인과 교통하셨을까요?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일어난 사건의 전말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사르밧 과부에게 성령의 감화를 통해 교통하고 계셨음이 확실합니다. 먼 길을 쫓기듯 여행한 후 지친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여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는 엘리야의 첫 번째 요구는 큰 믿음을 나타내는 것처럼 들리지는 않습니다. 먼 여행 끝에 허기지고 지친 엘리야는 왜 물만 달라고 했을까요? 그는 아마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이 이방 여인을 선택해서 나를 먹이고 공양하게 하신 것인가? 어떻게 이스라엘 여인도 아닌 이방 여인을 택하셨을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면서 머뭇거리다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로 하고 용기를 내어 물을 가지러 가는 여인을 돌려 세우고 다시 말하기를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그 때 여인의 답이 무엇이었나요?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여인은 하나님 여호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했던 것이 아닌가요?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순간 이 여인은 당황했습니다. 여인이 듣기에 이 얼마나 뻔뻔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요구였을가요! 이제 마지막 한 줌 남은 양식, 이것만 먹고는 죽으려는 기막힌 사정에 처한 여인에게 그 소중한 마지막 양식을 자기에게 달라니 말입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이것은 최대의 시험이었습니다. 이 가난에 시달린 과부의 집에 심한 기근까지 밀어닥쳐 비참하게도 하잘 것 없는 음식마저 끊어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여느 여자들처럼 생계에 위협이 올 때 의지할 남편이 없었습니다. 다만 어떻게 하든 먹여 살려야 하는 어린 아들이 있을 뿐이었지요. 가뭄과 기근이 들어 어렵사리 이어가던 하루 품팔이 일거리도 떨어지고, 어디 가서 그녀의 가난이나 굶주림을 하소연할 곳도 없는 이 가련한 여인이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에 처해 있던 바로 그 날 엘리야가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분은 굶주려 본 적이 있나요? 가난과 기아, 굶주림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와 욕구 즉 생존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생계 문제는 누구에게나 가장 힘든 시련이 됩니다. 자기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그 여인의 신앙은 그때 최대의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온 성경 이야기라서 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막상 이 일이 우리 자신에게 닥쳤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무리 이 여인이 신실한 믿음을 가졌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사람의 이기적인 요청이 왔을 때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을가요? 아니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음식을 더 풍부히 허락해 주시지는 못하실망정, 마지막 남아있는 조금의 가루와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자기를 먼저 달라는 뻔뻔한 사람을 보내시다니!
더구나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어린 아들이 있지 않은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어린 아들, 이 양식은 그녀의 아들에게 주려고 사력을 다해 지키고 있던 마지막 양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낯선 손님에게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주어진 시험은 그 여인이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남은 한 가지를 바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남편도 없이 아들 하나만을 의지하고 사는 가련한 여인에게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을 위하여 비축해 둔 마지막 양식을 바치라는 이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가장 소중한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과 거의 맞먹을 만큼 극심한 것이었고 큰 믿음이 요구되는 시험이었습니다.
마지막 한 가지를 바친 충성
사르밧 과부는 이제까지 모든 나그네를 친절하고 너그럽게 접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서 마지막 최후의 양식을 자신과 아들을 위해 보존하고 싶은 그녀의 인간적인 욕망과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그것을 주라는 성령의 음성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녀는 자신과 아이에게 초래될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셨던 이스라엘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성령께서 그녀의 마음 속에 자리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이기심을 버리라고 요구하실 때에 그녀는 그 음성에 굴복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충성인가요! 자신보다 자식을 더 생각하는 것이 모든 부모나 어머니의 심정입니다. 없어도 더 주고 싶고, 더 잘 먹이고 싶은 것이 부모의 욕심이 아닌가요? 그런데 먹을 양식이 떨어져 사랑하는 어린 아들이 먹지 못해 점점 말라가는 모습을 눈앞에 보는 엄마로서, 한줌 남은 가루로 최후의 음식을 만들어 먹은 후 죽어야 하는 절망적인 운명과 현실에 직면한 엄마로서, 이 시험은 얼마나 어려운 시험이었을가요? 참으로 큰 믿음과 신앙을 가져야 견딜 수 있는 시험이었습니다!
드디어 그녀의 마음속의 투쟁이 승리로 끝나자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 그녀의 귀에 들렸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왕상 17:10-14).
무섭고 절망적인 처지에서라도 그 여인은 마지막 양식을 낯선 사람에게 주라는 성령의 음성에 응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큰 신앙의 시험을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르밧 과부는 자기의 최후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엘리야의 말대로” 함으로 최고의 시험에 승리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최고의 시험이었습니다. 이 여인에게 그것은 모든 것, 그녀가 가진 최후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위해,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자신의 양식과 생계 수단마저 버리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당신의 충성심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마지막 환난의 때,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의 때가 올 때에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은 자기의 최후의 양식과 생계와 생명을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 바치라는 요구를 받을 것입니다. 목숨을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 자신의 안일을 하나님의 진리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들, 육신의 일을 영적인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이 시험에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최후의 생계 수단이 끊어지고 생명의 위협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그 충절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씀을 따라 자신의 마지막 남은 한 가지, 그녀에게 모든 것이었던 최후의 한 줌의 가루와 기름을 하나님께 바쳐서 충성한 이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는, 마지막 시대에 사고팔고 하지 못할 때에 가난과 굶주림과 생계의 위협 속에서도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하나님의 계명과 뜻을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생계가 아무리 어려워지고 생명과 목숨에 지장이 오더라도 마지막 남은 모든 것, 최후의 것을 포기하며 하나님께 충성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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