疾走(질주)-母性本能(모성본능)
1930년대 중반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갑자기 아이들이 "승현이가 물에 빠졌어요." 라고 소리치며 몰상개 재를 넘어서 장재마을로 달려왔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저의 선친(윤승현)의 모친 장라헬 여사는 신발 신을 틈도 없이 맨발로 논둑길과 산길을 달려서 강가로 갔었는데 가서 찾아보니 저의 선친께서는 아이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고 물에 빠진 아이는 저의 선친의 사촌(윤대현)이었다고 합니다. (이분은 물에 빠져서 익사해서 동네 어른들이 시신을 건졌답니다.)
저의 조모님께서는 20대 중반으로 아들이 물에 빠졌다는 소리에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달려서 가시느라 발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범벅이 되었지만 자기 자신의 고통 보다는 자식의 안위가 더 걱정이 되었기에 그렇게 달려가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어떤 사랑도 어머니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들 하지요. 그런데 이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이성적인 것 보다는 본능적인 것이지요. 이것저것 그리고 앞뒤를 가리거나 계산하지않고 먼저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어머니의 사랑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식은 어머니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신의 뱃속에서 탯줄을 통해 자신과 생명을 공유했던 한 생명체가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면서 다른 객체가 되었지만 자신의 모든 구성요소들은 물론 영적인 부분까지 부여한 그 새로운 인격체에 대해서 어머니는 여전히 자기 자신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자식의 위험을 자기 자신의 위험으로 감지하고 그 위험에 대해서 방어하려는 행동을 본능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들어서 알고 그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지요. 어머니의 사랑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한 지체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본능적인 것은 물론 이성적이기까지 하므로 이 사랑은 본질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사랑이지요.
어머니는 자식에게 몸을 주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지으실 때에 몸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몸을 만드신 후에 그 사람에게 하나님 자신의 생명(호흡,숨)을 불어넣으셔서 한 인격체를 완성하셨으므로 인간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흠없이 완벽하게 창조된 인간은 사탄의 사탕발림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과 자신과의 일체성을 부정하므로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지 못하므로 결국은 하나님의 참형상을 잃어버리고 죽은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사랑이시기에 불순종하여 죽게된 인간들을 그대로 버려두지 못하시고, 겉모양만을 유지하고 있는 인간들에게 자기 자신의 생명을 다시 한번 더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생명을 받으면 그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결국 영원한 지옥불에 완전히 소멸되고 마는 것임을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실 수 없는 죄가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 구주 예슈아 마쉬아흐께서 두 팔을 벌리시고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죄인된 상태 그대로 예슈아 마쉬아흐께서 피흘리신 그 십자가 밑에 나아가서 그 무거운 죄의 짐을 우리 구주께 맡기고 모든 죄에서 참자유함을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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