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에 대하여(13) 진짜 방언
17세기에 미국으로 들어온 흑이 노예들이 1800년도에 마쉬아흐교회 교인이 되도록 강요당하면서 그러한 교인들이 예배 도중에 이상한 소리들을 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출발한 방언 운동이 이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마쉬아흐교회의 교파들이 예배 시에 방언을 허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해야만 성령을 받은 증거인가?" 아니면 "어떻게 해야 방언을 유창하게 할 수 있는가?" 또는 "교회에서 방언하는 것이 성경적일까?" "진짜 방언이란?" 등의 질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언이란 문자 그대로 다른 곳(지방)의 언어를 말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의사를 소통하기 위하여 말하는 체계적인 언어인 것을 말하지요. 요하난의 계시 14장 6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 나는 창공을 나는 다른 천사를 보았다. 그 천사는 땅에 사는 사람들과 모든 이방나라와 민족과 언어(방언)와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방언이란 외국어(그 지방의 언어 곧 방언)를 말하는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알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코린토 성도들에게상 12장 10절의 말씀 중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이,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 통역함이 주어집니다." 여기에서도 방언이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외국어를 말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요즈음에는 방언이란, 개인이 하나님께만 말하는 이상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일까요?
성경에 원래 말씀된 방언의 은사의 내용과 그 종류가 심각하게 오해되어 버리고만 것입니다. 사도들의 일들 2장에 나타난 신약 시대의 첫 방언의 경험인 오순절의 방언도 외국 각 나라에서 몰려온 사람들에게(이민 간 예후다인들 곧 디아스포라)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알아들을 수 있게 나타난 성령의 은사가 바로 방언의 은사였던 사실을 우리는 간단한 성경 연구로 알 수가 있습니다. 외국에 살다가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샬라임에 모여온 사람들이 외국어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예슈아의 제자들의 설교를 자기들의 방언(외국어)으로 알아듣게 되자 다 놀라워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 성경의 방언이 현대에 와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발하는 것으로 둔갑을 하게 되었을까요?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오랫동안 방언을 해 왔었다는 한 여성이 하루는 자기의 방언의 경험이 성령의 가장 큰 증거인 성품의 변화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흥분된 상태를 주거나 짜릿한 감정 고조의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나 실제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감정과 느낌에 의존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인들은 옆에서 남들이 방언하면 자기도 무엇인가를 하여야 되기 때문에 일부러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만들어 내어 지껄여 왔다는 간증들은 그저 웃고 지나가야 할 일만은 아닙니다.
예슈아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우리가 믿는 모든 것들을 성경을 가지고 시험해 보아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이라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른다고 할지라도 단연코 버려야 하는 것이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믿음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우리가 성경책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만날 수 있습니다. 만일 오늘날 흔히 하는 방언이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는 경험이라면 그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경험이 아님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이 주시는 경험이 아니라면 그것은 다른 영에게서 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다음 시간에 또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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