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에 대하여(6)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한 방언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한 표징이 아니라 불신자들을 위한 표징입니다. 그러나 예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서 모두가 방언하면 방언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이나 불신자들이 들어와서 당신들이 미쳤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코린토 성도들에게상 14장 22절, 23절
성경은 "방언"을 "언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은 실제적인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슈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라고 마타이(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 또는 두 가지 정도의 언어밖에 모르는 제자들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제자들이 총명한 사람들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들 대부분은 외국어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마쉬아흐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사가 필요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알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언어를 말하게 하는 초인간적이고 신비스러운 언어의 은사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징들이 따르리니, 내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고,"마르코(마가복음) 16장 17절
이 성경 구절을 통하여 예슈아께서 말씀하신 "새 방언" 또는 "언어"는 하나의 "표적"으로서 외국어를 전혀 공부하지 않고도 그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김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전에 알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언어로 유창한 설교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방언을 말한 예가 3번 나옵니다.(사도들의 일들-사도행전 2장, 10장, 19장). 이 성경 구절의 예를 잘 살펴보면 방언의 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사도들의 일들 2장 1절에서 4절까지를 봅니다. "오순절이 되자 그들 모두는 한 곳에 함께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바람 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채웠다. 그리고 갈라진 혀가 불처럼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 각 사람 위에 앉았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영이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라고 기록 되어 있군요.
"불"은 능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방언의 은사를 불의 임함처럼 보여주심으로써 미쯔라임(애굽)의 파르오(바로)앞에 나아갈 때에 모쉐가 받았던 그 능력에(이름들-출애굽기 4장 10절~12절) 상당하는 능력과 예샤야(이사야)의 혀에 닿았던 하늘에서 내려 온 숯처럼(예샤야 6장 6절, 7절) 그들의 연약한 혀에 하늘의 능력이 내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방언의 은사를 내리기 위해서 오순절까지 기다리셔야만 하셨을까요? 사도들의 일들 2장 5절~11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예루샬라임에는 하늘 아래 모든 나라에서 온 경건한 예후다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 소리에 많은 무리가 몰려와서 혼란에 빠졌다. 왜냐하면, 각 사람이 자기 나라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놀라고 이상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보라, 말하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데 우리가 모두 각자 태어난 곳의 언어를 듣는 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파라스와 마다이와 엘람과 아람나하라임과 예후다와 캎파도키아와 폰토와 아시아와 프뤼기아와 팜퓔리아와 미쯔라임과 쿠린에 가까운 리비아의 지역들과 로마에서 방문한 자들과 예후다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과 크렡인들과 아랍인들이 하나님의 크신 일들을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우리 언어로 듣고 있지 않은가?)"
오순절은 예후다인들의 명절로서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 날은 로마 제국의 곳곳에 퍼져 있는 모든 진실 된 이스라엘 사람이 다 예루샬라임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날을 택하셔서 방언의 은사를 제자들에게 내리심으로써 그곳을 방문 중인 모든 사람이 자신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이 성경 말씀에 나타난 것을 보면 적어도 15개 이상의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오순절에 예루샬라임에 모였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내려진 방언의 은사로 말미암아 타지에서 살다가 오순절에 예루샬라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개심의 경험을 하게 되었고, 오순절을 보낸 후 그들은 제자들이 전한 새로운 복음을 가지고 자기 고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말씀은 방언은 전 세계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에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언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하여 내리는 은사임을 확실하게 증거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순절 날에 있었던 기적이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 은사는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은사가 아니었고, 다른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은사였습니다. 이것은 말하는 은사이었지 들음의 은사가 아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방언이 "하늘의 언어"로서 오직 하나님과 통역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도들의 일들 2장에서 제자들과 듣는 사람들이 모두 그 설교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절).
두 번째 예는 페트로가 코르넬료와 그의 가족들에게 전도한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페트로가 아직 이런 말을 하고 있는데 성령이 그 말을 듣는 모두에게 임하셨다. 페트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모든 신자들은 성령의 선물이 모든 이방인에게 부어지는 것에 놀랐다. 참으로 그들은 이방인들이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들었다."(사도들의 일들 10장 44절~46절) 사도들의 일들 10장 1절에 보면 코르넬료는 이태리 사람이었고, 페트로는 예후다인으로 아람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역사에 의하면 로마의 시종들은 여러 나라로부터 잡혀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페트로가 코르넬료를 만났을 때, 그 두 사람 사이에는 언어 장벽이 있었음이 확실하며, 페트로는 아마 통역을 통해서 소통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령이 코르넬료와 그 집안사람들에게 내려졌습니다. 그 결과, 그 곳에 있던 예후다인들과 페트로는 그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후다인들이 그 사람들이 그들의 언어로 말하는 "하나님을 높임"의 음성을 들었다고 적고 있습니다.(46절) 후에 페트로는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오순절) 우리에게 임하셨던 것처럼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사도들의 일들 11장 15절)라고 말하였습니다.
페트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코르넬료와 그 집안사람들이 예슈아의 제자들이 오순절 날 받았던 동일한 방언의 은사를 받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방언의 은사를 받은 코르넬료와 그의 가족들은 그들이 전에 전혀 알지 못하던 다른 언어로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방언에 관한 마지막 예로는 파울이 12명의 에페소 사람들에게 전도한 일입니다. 사도들의 일들 19장 6절에 "파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셔서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파울은 예슈아의 제자 중에서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사도였으며, 가장 많은 선교 여행을 하였던 사람입니다. 성령이 12명의 에페소 사람에게 임하였을 때에 파울은 그들이 방언하고, 예언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에서 쓰이는 언어를 말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야 전도하는데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방언의 은사는 여러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내려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의 일들 4장에는 2장에 나오는 오순절과 유사한 장면이 나타나 있지만, 방언의 은사는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모였던 장소가 흔들렸으며 사람들은 성령으로 감동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인들이 없었기 때문에 방언의 은사는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간구하자 그들이 모여 있던 곳이 흔들리고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였다."라고 사도들의 일들 4장 3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성령의 침례가 내려지는 이유는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전도하기 위한 능력을 받기 위해서 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슈아께서 "성령께서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아 예루샬라임과 온 예후다와 쇼므론과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들의 일들 1장 8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지 않는 사람들(외국인)에게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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