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on Church :: '성령의 역사' 태그의 글 목록

  • total
  • today
  • yesterday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블로그 이미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믿고 가르치며 예슈아 마쉬아흐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
Yaacob

'성령의 역사'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2.14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비밀의 공식
2013. 2. 14. 07:09 외솔/천로역정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비밀의 공식

이 비밀 속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공식이 들어있는데, 이 일체의 비결을 깨달은 사람만이 남은 무리의 특성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셋째 사자의 복음은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것과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셋째 사자의 복음은 목적과 범위와 결과에서 같다.


믿음의 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것은 죄인들이 그들의 죄와 철저한 타락과 죽어있는 상태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도록 하는 그분의 놀라운 방법이며, 또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예슈아 마쉬아흐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율법의 정죄에서 구원해 주시며 인간이 하나님과 그분의 계명 앞에서 새롭고 의로운 태도를 보일 수 있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비밀이다. 그래서 세 사자의 복음을 영원한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셋쩨 사자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체험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참으로 토라를 듣는 자들이 하나님께 의인들이 아니라 토라를 행하는 자들이 의로워질 것입니다."(로마 성도들에게 2장 13절)라고 성경은 말하는데 분명한 것은 "이 때문에 토라의 행위로는 어떤 육신도 그분 앞에서 의롭지 못할 것입니다. 참으로 토라로는 죄의 지식을 가질 뿐입니다."(로마 성도들에게 3장 20절)라는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토라는 거룩하고 선하지만 죄인을 의롭게 해 줄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의로운 토라이지만 토라를 범한 자를 무죄하다고 선언할 수 없다.하나님의 토라는 완전한 의이므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은 모두 토라에 완전히 일치하는 의를 가진 자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토라는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의를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아담 안에서 그 아담이 범한 죄 때문에 죽은 상태로(창조주 하나님이 보시기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미 죽어있는 인간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면 완전한 토라의 요구에 도저히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선한 일을(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행한다 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행위는 아무런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라가 요구하는 완전한 표준에 이를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 어떻게 그 나라에 들어가는 데에 필요한 의를 얻을 수 있는가?


문제의 해결책은 다시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도 파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토라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한 직후에 이렇게 말했다. "마쉬아흐 예슈아 안에서의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마쉬아흐를 그의 피에 의한 신실하심을 통하여 속죄제물로 삼으시고 그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간과하심으로 자신의 의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다가 지금 이때에 자신의 의를 드러내신 것은 자신이 의로우시다는 것과 예슈아의 신실함으로 의롭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로미성도들에게 3장 24절~26절). 여기에 인간이 의롭게 될 방법이 나오는데 그것은 예슈아 마쉬아흐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는 선물

"믿음으로, 은혜로 의롭게 되었다!" 이 외에 의를 얻는 방법이 어디 또 있겠는가? 분명히 죄인이 의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은혜의 선물이다. 의가 선물이라는 것을 파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5장 17절에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만일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죽음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군림했다면 은혜의 풍성함과 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한 사람 예슈아 마쉬아흐를 통하여 생명안에서 얼마나 더 군림하겠습니까?"


의가 선물이기 때문에 의의 보상인 영생도 우리 주 예슈아 마쉬아흐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쉬아흐를 화목 제물로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모든 죄가 용서받도록 하셨다. 그런데 이 용서는 하나님의 마쉬아흐의 피의 공로를 통하여 죄 없이함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용서와 더불어 마쉬아흐의 흠 없으신 의(생명)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이며 또한 우리를 의로운 사람(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파울 사도는 덧붙여 말한다. "그러나 이제 토라 외에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으니 그것은 토라와 예언서에 의하여 증언된 것입니다. 그것은 예슈아 마쉬아흐의 신실함을 통한 하나님의 의로서 모든 신자를 위한 것입니다. 참으로 거기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하는데 마쉬아흐 예슈아 안에서의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습니다."(로마 성도들에게 3장 21절~24절).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의를 입혀 주신다. 그리고 회개한 죄인에게는 마쉬아흐의 의로 덮어주셨기 때문에 더는 죄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는 토라가 요구하는 의를 갖게 되었다. 바로 살아난 것이다. 의의 근원으로부터 얻었기 때문에 이것은 진짜 의인 것이다. 의를 선물로 받은 것이다.


겉과 속이 같아야 진짜 의로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만일 하나님께서 의롭지 않은 사람을 의롭다고 간주하고 하나님의 의로 살짝 덮어주신다면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의롭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의롭다고 하시는가?  잠깐 다음의 성경 구절을 보며 그 문제를 생각해 보자.  "야붸가 자기 앞에 서 있는 자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이르시기를 , '그 더러운 옷들을 그에게서 벗기라.' 그리고 그가 그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네게서 네 죄악을 지나가게 했으니 네게 예복을 입힐 것이다.'"(즈카르야-스가랴 3장 4절).


이 성경 구절을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마쉬아흐께서는 의의 옷으로 입혀주실 때에 죄를 그냥 놓아두지 않고 없애버린 후에 의의 옷을 입혀 주신다는 사실이다. 죄의 용서는 하나의 형식이 아니다. 죄의 용서는 엄연한 현실로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실제로 깨끗하게 죄 씻음을 받는 것이다. 만일 죄 씻음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고 의로워지면 하나의 철저한 변화가 분명히 일어나게 된다. 아니,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 변화가 무엇인가? 그것은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는 변화이다. 다시 말해 겉에 의의 옷이 입혀진 것처럼 속도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새 옷을 입기 위해 더러운 옷을 벗듯이 죄를 벗어 버려야 한다. 회개한 죄인은 진정으로 죄를 미워하게 되고 그리하여 죄를 버리며 마음 속에 다시는 그 악한 죄를 짓고 싶은 마음과 의도가 없어져야 한다. 그런데 예슈아의 놀라운 희생과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그것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어떻게 거짓말하실 수 없고 불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죄를 그대로 사랑하고 있고 버리지 않는 사람을 그냥 의롭다고 칭해 주실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회개하는 죄인을 의롭다고 하실 뿐만 아니라 진짜 의롭게 해주신다.(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신다.) 


성경에 나오는 명확한 개념처럼 의의 옷을 입는다는 것에는 더러운 옷을 먼저 벗어버리는 것이 선제해야 한다. 더러운 옷 위에 그냥 의의 옷을 덮어씌워 가리는 것이 아니다. 의는 회개하고 버리지 않은 죄를 덮는 가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셔서 의롭다고 칭해 주시고(칭의) 의의 옷을 입혀주시면 그는 의의 옷을 입은 사람으로 마음 속의 의도와 모든 동기가 의로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은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창조 이전의 상태 즉, 흙이 되었다는 것이므로 이미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것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마쉬아흐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십시오. 새것들이 되었습니다."(코린토 성도들에게 하 5장 17절).


믿음의 의는 은혜의 파워(힘,능력)를 믿는 것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믿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믿는 것이며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실 때, 의의 옷을 입혀주실 뿐만 아니라 마음 속까지 의롭게 창조해주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믿는 것이다. "정결한 마음을, 하나님이시여, 제게 창조하시고 확정된 영을 제 속에 새롭게 하십시오."(찬양들 51장 12절-시편 51장 10절).라고 한 다뷛의 기도처럼 우리 마음 속이 정결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것으로 창조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의의 옷을 입혀주시고 또한 정결한 마음마저 주시고 새롭게 창조하시는 일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용서받고 칭의를 받은 후 같은 죄를 다시 반복하여 짓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능력이다. 그뿐 아니라 주님 안에서 거룩하게 성화 되며 영적으로 더욱 더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성경에서 사도 파울이 말한 "은혜"라는 단어는 힘, 즉 파워(Power)라는 뜻으로 쓰여졌다. 은혜는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하며 새롭게 탄생시키고 죄를 승리하게 하는 힘, 바로 성령의 능력이다. 로마 성도들에게 6장 14절은 "참으로 여러분의 죄가 군림하지 못하리니 이는 여러분이 토라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티토에게 2장 11절, 12절에는 "참으로 하나님 구원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우리를 가르치는 것은 불경건과 세속적인 욕심을 거부하고 이 세상에서 온전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토라가 들어와서 범죄가 많아졌지만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이는 죄가 죽음 안에서 군림한 것처럼 은혜가 의를 통하여 군림하여 우리 주 예슈아 마쉬아흐를 통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로마 성도들에게 5장 20절, 21절). 이 성경 구절을 보면 죄도 다스리는 권세(능력,힘)를 가졌고, 은혜도 역시 다스리는 권세(능력,힘)를 가진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은혜가 우리를 다스리는 때에는 옳게 행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으로 회개하여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게 하고 우리의 죄를 용서 하실 뿐만(은혜의 1단계) 아니라 죄를 미워하고 악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싫어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준다. (은혜의 2단계)그러므로 회개하여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서와 구원을 받아 새마음으로 거듭난 사람의 생애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늘 나타나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1차적으로 모든 죄의 용서함을 받았으나 그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여전히 아담 안에서 죽어 있는 것이다(창조되기 이전의 흙의 상태).  그러나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성령의 역사로(곧 은혜의 역사로)살게 되어 은혜의 2차적인 역사로 죄를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하고 의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은혜가 우리에게 군림하여 우리를 다스리는 역사이다. 그리고 이 은혜를 믿음으로 믿을 때에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비밀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Yaac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