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언약에 내포된 더 깊은 의미를 아십니까?
많은 그리스도인이 기독교에 들어온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두 언약에 대한 그릇된 사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뿐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심오한 영적 교훈과 반드시 배워야할 공과를 놓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언약에는 매우 깊은 뜻이 들어 있는데, 그것은 단지 계명과만 연관된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두 가지 언약에 내포된 깊은 의미를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갈라디아 4장에 등장하는 두 언약
갈라디아서 4장에는 사도 바울이 두 언약에 대해서 심도있게 설명한 기록이 나옵니다. 먼저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두 언약에 대해 설명하게 된 배경을 연구해보면, 이 두언약이 단지 계명이 폐했다거나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피상적인 논란의 화두로 사용되기에는 너무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바울이 두 언약을 설명하게 된 배경은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유대인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바로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율법주의를 고수하고 있던 유대의 거짓 교사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도 의문의 율법을 지켜야 하며 의식들과 또 할례를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잘못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심각하게 왜곡시켜서 갈라디아 교회에 혼란을 주고 있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반박하기 위하여 바울이 설명한 두 언약은, 믿음으로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 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믿음의 의"에 대하여, 그리고 그 속에 내포된 복음의 진수에 대하여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바울이 두 언약에 대하여 설명할 때에,아브라함의 "두 아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며 그 아들의 탄생을 예를 들어 비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설명 속에는 "두 여자"와 "두 예루살렘"도 등장합니다. 이 의미들에 대해서 함께 공부해 보기로 합니다.
갈라디아 4장 22절~26절
22절~23절: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절~26절: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 두 언약에 나타난 "믿음의 의"
먼저, 바울은 왜 두 언약을 설명하는데 아브라함의 두 아들과 그 탄생 배경과 방법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만국의 아비"라는 그의 이름의 뜻이 무색하게도 100살이 되도록 그에게는 자식이 생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아브라함은 늙었고, 사라도 생산할 능력이 없어진 늙은 여인으로 변했습니다. 그들의 몸은 생산과는 거리가 먼,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늙은 몸이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으나 세월이 점점 흐르고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어지자, 초조감과 믿음의 부족으로 그들은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사라의 종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방법으로 얻은 아들 이스마엘이 아닌, 사라의 몸에서 친히 난 아들이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 17:15,16) 성경을 보면, 처음에 아들을 낳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아브라함과 사라, 두 사람 모두 웃엇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불가능한 것에서 가능한 것을 행하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와 사자들이 떠난 다음에 그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 보고는, 아브라함과 사라 두 사람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들의 불신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굴복하고 그 약속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죽은 것 같은 태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이가 잉태되고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난 것입니다. 바울이 두 아들을 언급한 이유는, 이삭의 탄생을 통하여 "믿음의 의"에 관한 복음의 진수를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행위가 아닌 믿음을 통해서라는 복음을 가르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기독교 안에서 믿음의 올바른 정의가 많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머리로만 동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머리로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것을 이루어내는 기적이 생기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믿는 것입니다. 늙은 태에서 기적이 일어나 이삭이 태어난 것처럼, 우리 스스로는 어떤 선도 행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면 영혼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이 이루어집니다. 곧 의로운 마음과 동기를 가지게 되고, 의롭게 살 수 있게 되고, 의롭게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의로운 영적 생명을 낳는 일, 곧 우리가 의로운 행실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그 일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세상을 창조하셨던 말씀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며, 또한 거짓말하실 수 없고 미쁘사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바울이 말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는 의미입니다.
3. 두 아들의 탄생에 나타난 차이점
갈라디아 4장 22절~23절: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낫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구원의 역사를 아들이 나는 탄생의 차이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 탄생의 차이는 아들의 신분과 격의 차이를 결정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는 자유 없이 매이고 속박된 상태의 노예인 계집종에서 태어났고, 하나는 자유를 가진 주인 여자에게서 낫는데, 어떻게 누구에게서 나왔는가 하는 것이 그들의 신분의 품격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종이 낳은 아들은 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한 여자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
여기서 육체를 따라 났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행위와 노력과 힘으로 의를 이루고 구원을 얻으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인간의 힘으로 노력으로는 절대 율법을 지킬 수가 없으며,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율법으로 의로워지려고 하는 자는 죄의 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된 로마서의 기록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롬 6: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또한, 그런 상태를 바울은 율법의 지배를 받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롬 3:19 참조)
육체에 거하는 자, 곧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의 근본인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이룰 수가 없으며 하나님의 법의 정신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의로운 생애를 살기를 원하지 않으며 또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계명은 다만 무거운 짐이 될 뿐이며, 마음의 근본이 죄의 종이라서 죄의 세력 아래서 죄의 권세에 질질 끌려다닐 뿐입니다. 그것이 육체를 따라 난 것이고, 죄의 종이며, 또 율법 아래 있는 상태이며, 인간의 행위로 의를 이루고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약속으로 말미암아 난 자
그렇다면 "자유하는 여자에서 약속으로 말미암아 났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는 것과 그분의 말씀의 능력을 믿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8~22)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약속하시면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그것을 이루실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거듭난 사람 속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10) 이것이 무슨 약속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과 새 언약을 맺으십니다. 인간의 힘으로 율법을 지키려던, 인간의 힘으로 의를 이루려던 옛 언약의 정신을 물리치시고, 새 언약,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약속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 언약에 들어있는 약속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돌비가 아닌 사람의 생각과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시리라는 약속입니다.그리하여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거하고 함께 살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그분과 같이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함이란 외양적인 경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생각과 마음과 애정과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새 언약에 들어 있는 약속에서 "생각 속에 하나님의 법을 두고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회개하고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과 그분의 법을 너무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너무 즐거워하게 되어 , 머릿속에 온통 그분의 계명과 뜻이 가득 채워지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생각하고 살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예수께서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7)라고 고백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 기쁨이 됩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계명이 기록됩니다. 마음의 의도와 동기와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 이제는 하나님의 뜻만을 행하고 살 수 있는 넉넉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나타난 그분의 사랑의 성품이 생애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과 구속이 너무 감사하며, 죄와 악이 너무 싫고 죄악의 참상과 결과가 너무 혐오스러우며, 또 자신 속에 들어 있는 악의 작은 모양이라도 견딜 수 없어서, 죄를 버리고 매일 깊은 회개의 경험을 하며,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버린 상태가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된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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