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바벨론의 다니엘과 세 친구들
바빌로니아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남동쪽을 포함하는 오늘날 이라크의 바그다드 주변에서 페르시아 만에 이르는 이라크 남부지역을 말한다. 세계 역사에서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바빌로니아를 둘로 구분한다
.
첫째,
제1왕조(주전 1830-주전 1531)를 가리키는 구바빌로니아이다. 구바빌로니아의 수준 높은 도시문명이 피어나게 하는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왕은 제1왕조 제6대 왕 함무라비(Hammurabi, 주전 1792- 주전 1750재위)였다. 그는 분리된 도시국가들의 연합을 유도하고, 과학과 학문을 발전시켰으며, 또한 중앙집권 제도를 확립하고, 수도 바벨론에 성벽을 쌓아 마르두크(Marduk) 신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를 재편성하였다. 그는 운하를 파고 도로를 정비하여 무역을 융성하게 하였으며 무엇보다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을 공포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구바빌로니아 제국은 계속 쇠퇴의 길을 걷다가 주전 1530년경 히타이트인(헷족속)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둘째,
나보폴랏사르(Nabopolassar, 주전 626-주전 605재위) 왕이 주전 612년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하고 세운 신바빌로니아(주전 626-주전 539)이다. 이 제국은 그의 아들 느부갓네살(주전 605-주전 562재위) 왕 때 황금기에 이르렀으나 주전 539년 메디아-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되고 말았다. 그 후 바빌로니아는 독립을 잃은 채 주전 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점령할 때까지 갔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바빌로니아 도성을 자신의 제국 수도로 만들 계획을 세웠으며 죽을 때도 느부갓네살 궁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후계자들이 바빌로니아 도성을 포기함으로 결국 성경예언대로 황폐된 채 위대한 왕국은 회복되지 못하고 역사 속에 파묻혀버렸다(사13:19-22).
다니엘서는 신바빌로니아를 무대로 하여 펼쳐지는 대쟁투의 장면이다. 다니엘이 바빌로니아에 인질로 잡혀오기 전에 유다는 애굽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러나 주전 605년 이집트가 바빌로니아와의 갈그미스(Carhemish) 전투에서 패배함으로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지배권이 바빌로니아에 넘어갔다. 이때 이집트 측에 가담하였던 유다왕국은 바빌로니아로 포수(捕囚)되었다. 따라서 다니엘서에서 바빌로니아는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는 세력으로 역할 한다.
다니엘서는 아주 명백하게 역사와 예언의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전반부(1장-6장))는 주로 역사이며 후반부(7장-12장)는 대부분 예언이다. 그 두 부분이 상호 연관되어 있어 다니엘서는 문학적 통일체를 이룬다. 예언은 역사를 미리 보는 것이며, 역사는 예언이 확실하게 성취된 것을 증거 하는 것이다. 다니엘은 전반부에서 동시대의 인물들이나 사건들을 다루면서 매우 현저한 방법으로 참된 역사 철학을 드러낸다. 그는 거기에서 바빌로니아에 대한 하나님의 취급 방법을 자세히 진술함으로써 이 책이 우리로 하여금 후반부의 묵시적 예언(apocalyptic prophecy) 부분에 요약되어 있는 열국의 미래 역사를 꿰뚫어 보게 해 준다.
다니엘서의 시점(時點)은 다니엘 시대로부터 세상 끝 날에 이르기까지이다. 다니엘서의 연쇄적 사중 평행 예언들은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해야할 것들을 대략 제시하였다. 그 시점의 설정은 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이 영원히 망하지 아니할 나라를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예언을 연구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최후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어떻게 준비하여야할지 깨닫게 되고 믿음을 예언 위에 굳게 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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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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