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 죽음 이후의 상태
내가 장례식에 들어갔을 때 예배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음악은 아름다웠고 적당한 성경구절과 기도가 드려지고 있었다. 고인에 대한 약력 소개가 있은 다음,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목사님은 슬퍼하는 유가족들을 위로하면서 고인이 지금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고인의 몸은 죽었지만 그 영혼은 살아서 지금 하나님 앞에 올라가 있다고 말하였다. 검시관에 의해 사망 진단이 내려지고 장의사에 의해 방부제로 보전된 그 사람이 하늘 문을 통하여 장례식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 죽은 자는 보다 높은 상태의 생명체로 변화되어 영계에서 살아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깊은 놀라움을 느꼈으며, 목사님께서 인용하시는 성경구절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지 못함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그 목사님의 장례식 설교 내용은 죽음에 대하여 오늘날 종교계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혼돈을 잘 나타내고 있다. 만일 당신이 길거리에서 만나는 열사람에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하여 질문할 경우, 아마 당신은 5~6가지 서로 같지 않은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심지어는 마쉬아흐인들 사이에서도 죽음에 대한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생명과 인생에 대해서는 얼마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죽을 때에 어떻게 되는가? 어디로 가는가? 하늘? 지옥? 연옥? 지옥의 변방? 죽음은 죽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살아서 놀라운 경험을 맛보게 되는 사건인가?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침묵과 망각인가? 그 죽음의 그늘 가운데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우리의 사랑하는 죽은 자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살아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는가?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욥 14장 14절).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그 정확한 대답을 찾아보아야 한다. 죽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혼잡하지 않으며, 일관성 있는 대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어떤 성경구절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그 대답은 이치에 맞을 뿐만 아니라 유가족들에게 가장 큰 위로를 준다.
1. 죽은 자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 우리는 어떤 믿을 만한 근원을 갖고 있는가?
이사야 8장 19절,20절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우리가 진리를 알고자 할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정확한 정보를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 어떤 가르침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어떤 표준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하는가?
이사야 8장 20절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3.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가?
전도서 12장 7절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이 성경구절을 완전히 깨닫자면 우리는 인간의 창조로 되돌아가서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어떻게 창조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이 '신' 이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4. 사람으로 '생령'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떤 두 가지 요소를 결합시키셨는가?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몸속에 영혼을 집어넣어서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몸(진흙)과 호흡(신 또는 생기)을 결합시키신 결과, 아담이라는 '생령'이 존재하게 되었다. 아담의 몸이 생기(호흡)를 받았을 때에 그는 비로소 살아 있는 사람(생령)이 되었던 것이다. 전구는 전력에 연결될 때에만 빛을 얻게 된다. 빛은 전구와 전기라는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함으로 이루어진다. 전력을 제거하면 빛이 없어진다. 성경에 의하면 영혼은 몸과 생기(호흡 또는 신)의 결합체이다. 생기(호흡)가 몸에서 떠날 때에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 과정 :흙 + 신(호흡) =생령(살아 있는 영혼, 사람)
죽음 과정 :생령(살아 있는 사람) - 호흡 = 죽은 몸
5. 성경에는 동일한 원어를 가진 단어가 경우에 따라서 '생기' '신' '혼'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러한 경우들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가?
욥기 27장 3절 “나의 생명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이 오히려 내 코에 있느니라”
사도행전 7장 59절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영어 성경에는 욥 27장 3절의 BREATH(호흡)가 "생명"으로, 그리고 SPIRIT(신)은 “기운"으로 되어있다. 또한 사도행전 7장 59절에 SPIRIT(신)은 "영혼"으로 번역되어 있다. 창조 시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불어넣으신 것도 생명의 호흡 곧 생기였다. 그러므로 신, 생기,혼 등은 모두 호흡(생명력)을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흙 + 생기(또는 신) = 생명
6. 다윗은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시편 146장 4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7. 사람이 죽으면 그의 생각하는 능력이나 세상사에 관여하는 능력은 어떻게 되는가?
전도서 9장5절,6절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바 됨이라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8. 죽은 후에 사람이 얼마나 아는가?
전도서 9장 10절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 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여기에 의심이 있을 필요가 없다. 창조주께서는 사람이 죽을 때에 어떻게 되는지 아신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는 기억할 수도 없으며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시기할 수도 없다고 하신다. 이러한 증거만으로도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에 관한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성경 가운데 있는 가장 달콤하고도 가장 위안이 되는 진리 중의 하나는 사람이 죽으면, 부활 때까지 이 세상의 염려를 떠나 이 세상에 대한 근심에서 벗어나 조용히 쉰다는 것이다.
9. 죽은 자는 모두 어디로 가는가?
전도서 9장 10절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 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음부는 영어 성경에 'Grave'(무덤)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을 때에 다른 어떤 곳으로 가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늘이나 지옥이나 연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결코 어떤 상태로든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죽은 것이다. 죽었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죽음이란 생명체의 변경이 아니다. 그것은 변경된 상태에서의 생명의 연장이 아니다. 그것은 보다 더 풍성한 생명으로 해방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어떤 상태에서의 생명도 아니다. 죽은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는 것을 중지한 것이다.
10. 예슈아께서는 그의 친구 나사로의 죽음을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요한복음 11장 11절-14절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 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여기에서 죽음은 잠자는 것 곧 완전한 무의식 상태에서 쉬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고, 잠자는 기간 동안에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 전연 알지 못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에서도 똑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다. 성경은 50회 이상이나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11. 마르다는 그의 오빠가 언제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하였는가?
요한복음 11장 23절,24절 “예슈아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슈아의 가까운 친구였던 마르다는 주님의 봉사 사업을 3년간 받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죽은 자는 마쉬아흐께서 약속하신 대로 마지막 날 부활 시에 일어날 것을 믿었다. 죽은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나사로의 경험 가운데서 잘 묘사되어 있다. 예슈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잠들었다 하시고 당신의 친구의 사망을 잠자는 것으로 말씀하셨다. 그리고서 마쉬아흐께서는 당신이 두 번째 오실 때에 일어날 일을 실증해 보이셨다. 열린 무덤의 입구에 서서 예슈아께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셨다. 나사로는 생명을 주시는 분의 음성에 순종하여 무덤에 들어갈 때의 옷을 입은 채 걸어 나왔다.
12. 부활이 없다면 모든 죽은 자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고린도전서 15장 16절-18절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마쉬아흐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마쉬아흐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마쉬아흐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3. 마쉬아흐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하는 의인들의 부활을 언제 기대할 수 있는가?
고린도전서 15장 22절,23절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마쉬아흐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마쉬아흐요 다음에는 마쉬아흐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예슈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이 영생을 받고 일어나는 때는 마쉬아흐의 재림 시이다. 예슈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한복음 14장 19절)하신다. 로마의 지하 묘지 안에 있는 마쉬아흐인 순교자의 무덤 위에는 아래와 같은 말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아침까지 안녕히". 마쉬아흐인 소망을 가지는 것, 곧 사망의 밤 이후에 위대한 아침이 온다는 진리를 아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 소망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버리지 않는가? 성경에 의하면 죽음이란 단순히 부활 시까지 생명이 잠깐 중단되는 것을 뜻한다.
14. 성경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라고 하였는가?
요한복음 5장 28절,29절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15. 마쉬아흐의 재림 시에 죽었던 의인들은 어떻게 된다고 바울은 말하는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17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마쉬아흐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꿈이 없는 평안한 잠보다 더 완전한 휴식이 또 어디 있겠는가? 모든 수고, 근심, 번민을 다 잊고, 고통과 눈물이 없이 편히 쉬는 밤! 우리가 잠잘 동안에는 도무지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와 같이 성도들이 눈을 감고 사망의 잠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부활하여 잠에서 깨는 순간까지의 기간은 일순간처럼 느껴질 것이다. 비록 그가 무덤에 오랜 세월 있었다고 할지라도 짧은 잠을 자고 일어난 것과 같을 것이다.
16: 부활한 몸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빌립보서 3장 21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분명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고통과 불구와 불완전과 추한 모든 것이 영원히 없어질 것이다. 죄악의 모든 흔적이 사라질 것이다.
17. 마쉬아흐 재림 시에 구원받은 자들이 무엇을 얻을 것인가?
고린도전서 15장 51절-54절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만일 몸은 죽지만 영혼은 영원히 살게 되는 불멸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예슈아 재림 시에 하나님께서 불멸의 생명을 주실 필요가 없다. 죽지 아니함(불사)은 하나님께만 속한 속성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디모데전서 6장 15절,16절). 질병과 사망의 흉측한 흔적을 지니고 무덤에 내려간 몸들은 부활 시에 죽지 아니할 건강과 활력을 가지고 일어날 것이다.
살아 있는 성도는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기" 위해 들어 올려 질 것이다. 이 얼마나 영광스런 장면인가! 우리 모두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죽음으로 인하여 헤어진 친구들과 가족들이 다시 연합되며 다시는 헤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것은 우리가 마쉬아흐와 함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18. 우리가 영생을 가진 것을 어떻게 아는가?
요한일서 5장 11절-13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 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마쉬아흐 재림 시에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만 죽지 아니하는 불멸의 속성을 주실 것이다. 이 선물은 마쉬아흐를 영접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질 것이다. 오직 마쉬아흐를 통해서만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에 당신의 아들을 죽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죽는 순간에 우리의 존재는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마쉬아흐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한 순종의 생애를 사시고, 우리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죄와 질병과 슬픔과 사망이 영원히 없어질 영광스런 내세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마쉬아흐께서는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사망을 정복하신 것을 증명하셨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며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는데" 있었다(히브리서 2장 14절).
마쉬아흐의 십자가를 통하여 영생을 약속하는 구원의 선물을 받은 마쉬아흐인은 마쉬아흐의 재림 시에 부활할 것을 굳게 믿고 눈을 감을 수 있다. 죽은 성도들이 지금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하늘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죽은 유가족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이야기해 줌으로써 위로해 주라고 말하고 있다. 죽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지금 하늘에 가 있다고 유가족들에게 말하는 것은 성경적인 위로 방법이 아니다(데살로니가전서 4장 18절). 진실로 예슈아께서 속히 오실 것이며 우리의 사랑하는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것보다 더 훌륭한 위로가 어디에 있겠는가? 예슈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요한복음 6장 54절)고 하신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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