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요한계시록의 안식일
1. 주의 날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 1:10).
오! 드디어 주일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2:28절에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약 70여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예수님의 선언이 귓가에 생생하게 맴돌았을 것입니다. 또 이때는 AD 100년경이었고, 그때는 일요일을 지키는 관습이 교회에 전혀 없을 때였습니다. “주의 날(Lord’s day)”은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날”을 말하는 것인데, 예수님이 “어떤 날의 주인”이라고 한 것은 안식일 밖에 없습니다. “주일” 즉 “주의 날”로 부르게 된 것은, 서기 343년 사르디카 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이며 AD 364년에 가서야 라오디게아 종교 총회가 공식적으로 “안식일을 제칠일인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꾼다고 공표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떠나 배도하는 일이고, 교회의 권위를 성경위에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놀랍지 않은 것은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언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정직하게 답변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내가 주의 날에 계시를 보았다”할 때 “주의 날”은 토요일인가요? 일요일인가요?
2.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왜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아야 한다고요?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중 넷째 계명에 당신의 인을 기록해 놓으심으로써, 나머지 모든 계명도 동일한 하나님의 권위로 보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다윈의 진화론의 영향으로 종교적인 회의주의자나 불가지론자들로 변해 버렸습니다. 진화론은 창조 사실뿐만 아니라 “죄에서 구원해 줄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성경의 진리에도 치명타를 남겼습니다. 또한 안식일은 누가 참 하나님인가를 말해주는 표이기 때문에 사단은 태초 이래로 계속해서 안식일을 증오해 왔습니다. 사단은 그리스도인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매우 교묘하고 노련한 전략을 세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믿음을 파괴하고, 사람들의 순종을 자기에게 돌릴 수 있을까? 하나님의 창조력과 그분의 다스리시는 권위를 나타내는 넷째 계명을 공격하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 되지 않겠습니까?
안식일의 목적이 하나님을 창조주로 기억하는 것이므로, 만일 그 날이 항상 충성스럽게 준수되었더라면, 지구상에는 한 사람의 이교도나 우상숭배자들도 없었을 것입니다.
3. 아마겟돈 전쟁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사단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용의 편에 있습니까? 남은 자손의 위치에 있습니까? 사단은 특별히 마지막 시대, 먹고 살기 위해서 안식일을 범할 수밖에 없도록 환란과 핍박을 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왜 섬기는지 자기의 동기가 온 우주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대다수가 짐승의 표를 받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 목숨을 바칠 때까지 하는 순종은 구원 얻으려고 억지로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안식일 지키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가증스러운 것이 될 때 예수님의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마음에 있어야 가능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완전히 굴복한 다음 이제는 주님을 기쁘게 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주를 따라 사는 것. 그것이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안식일은 하나님의 인과 충성의 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의 생각대로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정신을 품고 있습니다. 안식일의 견해에 대해 자신들과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박해하고 압제하며 법을 제정하려고 하며, 그들 자신의 견해를 관철시키려고 정치적 세력과 동맹하여 핍박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4. 복음과 심판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6,7).
영원한 복음은 변치 않는 복음을 뜻합니다. 안식일은 구약에도, 신약에도, 십자가 이후에도, 예수님의 부활 승천이후에도 지켜졌을 뿐 아니라 세상 끝과 그리고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영원히 지켜질 것입니다. 안식일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는 생명의 황금다리입니다. 창세기부터 펼쳐져 오던 하나님의 대 구원의 역사는 계시록에서 이렇게 마무리 지으면서 인류에게 호소합니다.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으니 너를 지으신 자를 경배하라!”
5. 승리하는 그리스도인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위해 준비할 자들의 모습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품성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에게만 찍혀질 것인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맞고 환난의 때에 보호함을 받게 될 자들은 예수의 형상을 충만하게 반사할 것입니다. 그 인은 어린양의 보혈로 거듭나고 성령의 역사로 거룩한 율법이 마음에 기록된(렘 31:33) 사람들에게 쳐지기 때문에 “예수의 믿음으로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의 형상을 충만히 반사한다”는 말이며 그래서 “안식일이 참 백성과 거짓 백성을 구별하는 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지 못하도록 갖은 모욕과 조롱으로 비웃고 손가락질할지라도 예수님의 인정하심만 있으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소유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외부적 증거가 조금도 없는데도 그 약속을 믿고서, 집과 친척과 고향을 버리고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곳으로 따라가고자 나아갔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최고문명시설과 편리함을 갖춘 완벽한 도시였습니다. 그때 당시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갖추어질 정도였지요. 그런데 거기서 떠났습니다. 목적지도 없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무작정 나왔습니다. 사막의 생활이 얼마나 불편했겠으며, 모래바람과 얼마나 많은 위험한 환경에 직면했겠습니까? 이처럼 아브라함에게 임한 시험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고 그에게 요구된 희생도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르심에 순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에 관하여 묻지 않았습니다.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건강에 적합한지, 그 지방은 유쾌한 환경을 제공하며 재물을 쌓을 기회를 줄 것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순종할 뿐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은 하나님께서 그로 있기를 원하시는 곳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이 시험을 당하였던 것처럼 오늘날도 시험을 당합니다. 그들이 하늘로부터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는 않으나, 말씀의 교훈과 섭리의 사건들을 통해 그들을 부르십니다. 그들은 극기와 고난과 희생의 길인 것처럼 보이는 길로 들어가기 위하여 부귀와 명예를 보장하는 직업을 버리며, 편리한 생활을 떠나고, 친족과 작별하라는 요구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주께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손해를 이익으로 간주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이와 같이 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사람이요, 그와 함께 “현재의 고난은… 족히 비교할 수 없”(롬 8:18)는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고후 4:17)을 나누어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 백성의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손의 행사는 진실과 공의며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 무궁히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시 111:7,8)입니다. 사람의 유전을 따를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날을 순종하며 지킬 것입니까?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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