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대하여(1) 구원, 멸망, 어느 것이 더 쉬울까요?
ouj ga;r ejpaiscuvnomai to; eujaggevlion: duvnami" ga;r qeou' ejstin eij" swthrivan panti; tw'/ pisteuvonti, jIoudaivw/ te prw'ton kai; {Ellhni.(로마 성도들에게 1장 16절)
1)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를 손대지 못합니다.
다이너마이트 라는 단어는 헬라어의 “duvnami"”(뒤나미스)를 번역한 것으로서, 그 원어의 의미는 "능력"입니다. 성경에서 능력이라는 단어는 예슈아 마쉬아흐의 복음을 묘사하기 위하여 종종 사용되는데, 파울은 “참으로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모든 신자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예후다인에게며, 그리고 헬라인에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로마 성도들에게 1장 16절).
얼마나 많은 마쉬아흐인이 복음의 폭발적 능력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로마서 1장에 기록된 파울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복음을 소유한 모든 사람은 놀라운 능력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과연 그렇습니까?
불행히도 대다수의 마쉬아흐인의 생활은 무기력하고 나약합니다. 놀라운 능력 대신에 실망과 패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요? 그런 사람들이 정말로 복음을 믿고 있는 것일까요? 왜 그들의 생애 속에 그토록 능력이 없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이 공언하는 바를 진실로 믿지 않거나, 거짓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복음만이 줄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판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가장 큰 영적 문제는 복음을 잘못 이해하는 데에서 옵니다. 슬프게도,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통하여 자신들이 받는 것이 무엇이며, 그 복음이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 속에 나타나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주 넘어지게 되며, 자신들의 연약한 인간적 믿음으로 해낼 수 있는 것들만을 주장합니다.
왜 마쉬아흐인들이 능력을 잃어버린 채 자신들의 연약한 인간적 믿음으로 해낼 수 있는 것들만 주장하고 있을까요? 그 까닭은 그들이 사탄이 주는 두려움 때문에 겁쟁이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특권에 대하여 그들을 성공적으로 기만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악한 자의 가면을 벗겨서 그가 주장하는 거짓을 폭로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사탄은 이 세상과 모든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자신의 주장을 사람들이 믿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그의 거짓 주장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를 다스릴 권세가 없으며 성도들을 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마쉬아흐께서 거하시는 곳과 그분께서 다스리시는 곳에서는 사탄이 꼼짝 못하고 벌벌 떨며 피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사탄의 능력보다 훨씬 크다는 영광스러운 진리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항상 확신에 차 있도록 합시다.
물론 사탄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이 죄인들의 생활 속에 역사하여 그들을 자기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영향력을 자주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마쉬아흐께서 그 죄인 속에서 사탄을 다시 쫓아내시고 영혼을 다스리실 때에는 선의 능력이 악의 능력을 지배하게 됩니다. 사탄보다 마쉬아흐의 능력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 진리라면 죄의 세력보다 은혜의 능력이 훨씬 더 큽니다. 하나님과 마쉬아흐와 성령의 능력은 이 우주 안의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것입니다. 마쉬아흐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벌어졌던 싸움에서 승리하셨으며, 사탄은 패배한 원수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이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멸망하는 것보다 구원받기가 훨씬 더 쉬운 것입니다.
2) 힘든 것은 범죄자의 길이지 순종하는 자의 길이 아님
예슈아께서는 자신을 따르기가 쉽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마쉬아흐인 생활에 따르는 여러 가지 제약이 가져오는 무거운 짐 때문에 마쉬아흐인들이 불행할 것이라는 암시를 전혀 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길이 쉽고 가벼울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예슈아께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분을 핍박하던 사울을 만나셨을 때 그에게 “가시 막대기를 발로 차는 것은 네게 힘들 뿐이다.”라고 사도들의 일들 26장 1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그분께서는 성령을 거역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범죄자의 길은 힘들지만 순종하는 자의 길에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이 자신의 능력을 거짓으로 과장함으로써 우리를 세뇌하려고 하는 기만을 막아야 합니다. 죄의 지배 하에서는 옳은 일을 하는 것보다 그릇된 일을 하는 것이 더 쉽지만 은혜가 다스리는 곳에서는 죄를 범하는 것보다 의를 행하기가 훨씬 더 쉽습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에게 속한 특권을 주장하지 못합니까? 성경을 기록한 자들은 제한된 사탄의 권위에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됩니다. 파울은 기록하기를 “토라가 들어와서 범죄가 많아졌지만 죄가 많아진 곳에 은혜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이는 죄가 죽음 안에서 군림한 것처럼 은혜가 의를 통하여 군림하여 우리 주 예슈아 마쉬아흐를 통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로마 성도들에게 5장 20절, 21절).
“죄가... 군림한 것처럼”이라는 표현을 주의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죄가 군림합니까? 바로 죄가 다스리는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신령한 생각과 행동을 거스르는 육체적 본성은 은혜로 마음을 채우려는 우리의 노력을 압도합니다. 그러나 은혜가 죄보다 “더욱 풍성해졌다.”는 것은 “죄가 군림한 것처럼 은혜도 군림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은혜”가 죄의 모든 세력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능력임이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보증이 아닙니까? 사탄은 마쉬아흐께 굴복된 생활 속에 역사하는 복음의 폭발적인 힘에 비하면 너무도 하잘 것 없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간은 이것으로 마치고 다음 시간에 또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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