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대하여(6) 버림 받을 위험
사도 파울은 육체적 죄의 성향을 재갈 먹이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의 면전으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내 몸을 괴롭혀 복종시키는 것은 아무쪼록 내가 남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버림받지 않기 위함입니다.”(코린토 성도들에게 상 9장 27절). 파울이 여기서 사용한 “버림”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ajdovkimo" 아도키모스”로서 다른 곳에서도 버린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만 원래의 사전적 의미는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가치 없는”입니다. 결국은 가치가 없기 때문에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파울은 자신의 생애가 다시 죄에 사로잡히도록 허용한다면 멸망당할 수밖에 없음을 생각한 것입니다.
파울은 또한 중생(거듭남)을 경험한 신자들이 파멸을 당할 가능성에 대하여도 말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주의 만찬을 합당하게 먹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몸을 분별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의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코린토 성도들에게 상 11장 29절). 이 사람들은 마쉬아흐인들이며, 구원을 함께 나누어 가졌던 신자들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당할 수 있습니까? 파울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심판을 받습니까? 디모데전서 5장12절에 그 대답이 나옵니다. “그들은 처음의 믿음을 무시하였으므로 심판받을 것이다.” 신자가 “처음 믿음을 무시하였으므로” 마지막 때에 심판을 당하게 될 수 있음이 얼마나 분명합니까?
저는 영생에 대한 영원한 보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비유로 들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설명하는 것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내 자녀는 나의 가족으로 태어났으므로, 그들은 항상 나의 자녀이다. 그들은 이미 태어난 존재이다. 나의 자녀와 나의 관계 즉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분리될 수 없다. 자녀가 순종하든지 불순종하든지를 불문하고, 그는 항상 나의 자녀인 것이다.” 이 논리는 중대한 것 하나를 빠뜨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자녀가 다시 태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자녀가 병들어서 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의사들은 어머니들에게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이야기 해줍니다. 아이가 죽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아있기 위해서는 해주어야 할 권고와 경고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약 아기가 잘 먹지 않는다면 그 아기는 죽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슈아께서도, “아멘, 아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만일 너희가 그 인자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자신들 안에 생명을 가지지 못한다.”라고 요하난 6장 53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 이제, 최종적인 구원을 위해서는 계속적인 순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셨습니까? 파울은, “만일 여러분이 자신을 순종하는 종으로 드리면 여러분이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죄의 종이 되어 죽음에 이르든지 순종의 종이 되어 의에 이르든지 하는 것입니다.”라고 로마 성도들에게 6장 1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더 이상 마쉬아흐를 순종하지 않기로 선택한 후 사탄에게 순종할 때, 그는 더 이상 마쉬아흐께 속하지 않고 사탄에게 속하게 됩니다. “자녀여, 아무도 여러분을 치우치지 못하게 하십시오.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분이 의로우신 것처럼 의롭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사탄에게서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사탄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드러나셨으니 곧 사탄의 일들을 멸하려는 것입니다.”(요하난의 편지 상 3장 7절, 8절).
이브리인들에게(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에서 떠나는 일에 대하여 특별한 경고를 거듭해서 하고 있습니다. 이브리인들에게 10장 23절은, 일단 한번 구원받으면 그 구원이 계속되며, 아무도 그 구원을 번복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듭니다. “참으로 약속하신 분은 신실하시니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소망의 고백을 굳게 붙듭시다.”라고 기록하여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으로 고백한 그 고백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으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신자들의 모임에서 뒤로 물러가도록 유혹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권면이 주어집니다. 이것은 분명히 뒷걸음질에 대한 경고 중의 하나입니다. 이 편지서의 저자는 이 경고의 대상에 자기 자신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기록하기를 “참으로 우리가 진리의 지식을 얻고 나서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다면 속죄제를 위한 희생제물은 더 남아 있지 않고, 심판을 기다리는 두려움과 적대자들을 삼키려는 맹렬한 불만 남아 있습니다. 모쉐의 토라를 무시한 자도 두세 증인의 증언으로 무자비하게 죽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신이 거룩해진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고 은혜의 영을 욕되게 하는 자는 거기에 합당한 악한 형벌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 보십시오.”(이브리인들에게 10장 26절~29절). 여기에 묘사된 사람들은 진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고의적으로 배도에 빠진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확신을 버리고 멸망에 빠질 가능성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분명한 경고를 남겼겠습니까?
이브리인들에게 6장 4장~6절에서, 우리는 또 다른 두려운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한 번 빛을 받아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앞으로 올 세상의 능력을 맛본 사람들이 출교하면 그들을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습니다. 이는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욕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중생을 경험했으나 후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마쉬아흐를 부인하며 성령을 버린 자들에 대해 이보다 더 잘 묘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 성경구절이 경고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과 결정에 의해서, 하나님의 영향력 밖에 자기 자신을 두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은 자신의 불순종을 통하여 마쉬아흐를 계속해서 십자가에 못 박으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 시간은 이것으로 마치고 다음 시간에 또 다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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