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변화와 진보 좌파의 등장
그러나 미국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법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적어도 20세기 중엽까지는 자유사회를 유지해 왔다. 헌법에 명시된 종교와 정치의 분리 원칙이 잘 지켜졌으며, 종교의 자유, 만인의 평등, 행복추구권, 자유 및 생명권 등 헌법에 규정된 사항들이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것은 평등권, 공화제, 대의제, 사유재산, 인권과 언론의 자유를 구현하는 제도를 확립했고,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를 바탕으로 하여 근면, 자조, 절약, 도덕 생활 같은 것이 국민 윤리로 자리를 잡았다. 정부는 각 개인이 자신을 실현하는데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기본 사상이었고 그래서 미국에서 개인의 자유는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활방식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공산주의나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나 독재 사상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1929년에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그런 사조가 깨어지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1930년대의 경제 대공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시행하면서 미국도 유럽 국가들처럼 정부개입 또는 국가통제의 방식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의 자유주의적인 체제에 대한 첫 번째 도전이었다. 이에 더하여 미국의 자유주의적인 체제를 흔드는 두 번째 도전이 있었다. 그것은 1960년대에 들어서 '신좌파' 세력이 등장하여 미국적 체제를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신좌파는 구좌파에 반발하면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토니 주트"는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라는 그의 저서에서 캐밀 파야의 글을 인용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위대한 이상을 품고 1960년대를 살아온 우리 세대는 결국 자유주의를 파괴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주트에 따르면, 1960년대 신좌파들은 불황과 억압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의 잘못에서 온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변혁의 주체는 서서히 남성에서 흑인, 학생, 여성 등에 넘어갔고, 곧 동성애자가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런데 신좌파는 단지 자본주의의 불의에만 항거한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억압과 복지 국가를 비판했다.
이전의 사회에는 사회, 계급, 공동체가 중요한 개념이었다면,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신좌파의 개념에서는 공동의 목표나 전통적 권위는 존중되지 않았고, 개인적 주관주의에서 비롯되는 이해관계와 욕망이 중요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신좌파 세력은 청교도의 윤리를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추진한 '성 혁명'과 '마약 혁명'이 미국에 세속주의의 문화를 확산시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롭게 자리 잡은 문화는 흔히 대항문화라고 불리게 되었고, 그들은 이 대항문화가 청교도주의에 토대를 둔 전통문화를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전통문화와 대항문화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결과로 미국인들은 오랜 국민적 합의를 깨고 새로운 사상을 가진 자유주의파인 진보파와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하려는 보수파, 곧 좌파와 우파 등으로 대립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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