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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ac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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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11 두 여자와 하늘 예루살렘
2012. 11. 11. 06:15 외솔/천로역정

두 여자와 하늘 예루살렘

바울은 두 언약, 곧 옛 언약과 새 언약을 설명하기 위해 두 여자를 비교하면서 특이한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곧 두 여자와 더불어 시내 산의 예루살렘과 위에 있는 하늘 예루살렘을 비교하며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비유들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이 의미를 연구해 보면 그 속에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인 "믿음의 의"와 복음의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1) 여종 하갈-종을 낳은 자

갈라디아 4장에서 바울은 두 언약을 언급하면서 이것을 두 여자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4장 24절~26절: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여기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여종 하갈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갈에 대하여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더 나아가 이 하갈은 "시내 산에 있는" 이 땅의 예루살렘과 같으며,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하는 자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무슨 뜻이며 무슨 비유일까요?

 

종은 종을 낳을 뿐입니다. 종이 낳은 자녀는 종이 됩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인간적인 행위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고 하갈을 아내로 삼아 아들을 낳은 사실을 인간이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율법을 지키려 하고,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율법을 지키려 하고 자신의 구원을 이루려는 것은 행위 위주의 율법이며, 그것이 곧 행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려는 율법주의적인 종교는, 그 속에 사랑도, 그리스도도 없으므로 사람을 결코 예수 그리스도와 영생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정신에 의해 행해지는 금식이나 기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입니다. 예배와 집회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신앙의 척도를 재고,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반복하거나 외형적인 겸손만을 나타내며, 남의 이목을 의식하고 시선을 끌기 위한 봉사를 하고 헌금을 하는 일들은 아무 가치가 없는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이며, 이런 일들을 행하므로 자신을 의롭고 신앙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은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힘씁니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로는 결코 구원을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이 범한 거룩하고 공의로운 율법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일지라도 그것은 전혀 무가치한 것입니다.율법을 지킴으로써 자기 자신의 행위로 천국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자는 온전히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바로 율법 아래 있는 자, 죄의 종이 된 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체를 따라 난 자와 같은 맥락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2) 땅에 있는 예루살렘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부터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바울이 언급한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라는 표현 역시 인간의 힘으로 율법을 이루려는 시도를 가리킵니다. 옛날 시내 산이나 땅 위에 있던 예루살렘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행위로 율법을 이루려는 옛 언약의 경험과 같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와 히브리서에서, 옛 언약은 행위에 근거가 되어 있지만 새 언약은 믿음 위에 근거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이를 얻으려고 하갈을 잘못 사용한 것처럼, 이스라엘은 도덕적 지시들과 의식적 지시들을 왜곡시켰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과 그들의 죄를 구속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기 위해 세워졌음에도, 그들은 이 의식들을 단순한 행함의 제도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그리하여 옛것을 옛 언약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그 언약을 행함의 제도로 왜곡시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행함의 옛 언약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과 같은 근본적 언약을 백성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행함의 제도가 된것은 이스라엘이 이것을 왜곡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내에서의 과오는 백성의 잘못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다음에 언약은 성소 모형들로서 공식화되었는데, 그것은 때가 이르면(원형이신 예수께서 오시면) 끝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옛 언약의 정신과 경험에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율법주의에 빠지지 말라고 경계하면서, 바울은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갈 4:30)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지은 땅 위의 예루살렘은 행함으로 말미암아 얻으려는 의와 구원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옛 언약의 경험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범했던 잘못에 빠지지 않기 위해, 즉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계명을 자연스럽게 지키게 되는 새 언약의 경험에 들어가기 위해 옛날의 잘못된 신앙 경험들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에 의해서만 인간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위에 있는 예루살렘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왜 바울은 새 언약을 설명하면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과 자유자 어머니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

이유 1. 하늘 예루살렘=믿음으로 얻는 의=하나님의 의

바울은, 사람들이 곧 멸망할 인간의 손으로 지어진 이 땅의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하늘에 있는 더 좋은 예루살렘을 바라보게 하려고 , 그리고 행위의 상징이 되어 오던 폐해진 의문의 율법과 의식들에서 시선을 돌려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어진 더 좋은 하늘 예루살렘을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위에 있는 하늘 예루살렘은 인간의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하나님의 손으로 다 지어진 것입니다. 의를 이루는 일에 있어서나 구원을 이루는 일에서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인간의 힘과 노력을 다한다 해도 인간의 공로는 구원을 얻는 데에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능력을 받아야 구원은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의를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을 하늘 예루살렘에 비유한 것은, 인간의 힘으로 이루기에는 불가능한 것, 즉 없는 것을 창조하고 만들어내시는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아니면 새 언약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바울이 사용한 것입니다.

 

이유 2. 생각과 마음에 계명이 쓰여지는 것은 하늘의 능력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계명이 쓰이는 일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전혀 불가능한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옛것을 변경하고 개량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자신과 죄에 대하여는 죽고 전적으로 새로운 생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성령의 효과적인 역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전에 좋아하고 사랑하고 즐기던 것이 싫어지는 변화가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받아드리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그분께서는 당신의 의와 아름다운 의의 성품을 나누어주십니다. 성품을 완전케 하는 위대한 사업은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결코 성취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성품을 향상하고 개발하는 일에 있어서 인간은 높은 곳으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계속 공급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에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 수 있는 능력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성품을 변화시키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주님께 나아가 회개하고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당신의 법을 기록해 주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일하게 되기를 갈망하는 그 순간에 바로 주님께서는 그분의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그 형상을 새기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완전케 하시는 이 일을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그 일을 그분은 마치실 것입니다.

 

이유 3. 하늘에서 새 예루샇ㄹ렘이 내려오는 것처럼

성도들이 구원을 얻었을 때에 하늘에서 예루살렘이 내려와 성도들이 그곳에서 사는 것처럼, 성령의 역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구원을 이룬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바울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것 또한 하늘에서 내려오는 역사가 없이는, 곧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결코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약속은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와 가능케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한 것입니다.

 

4) 자유자, 어머니

바울은 또 세 언약을 언급하면서 "자유자 어머니"라는 표현을 씁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고 양육하는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그것처럼 성령께서도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고 또 의로 양육시키십니다. 특별히 여기서 자유자란 표현을 한 이유는, 새 언약이 이루어진 사람은 율법에 매이지 않는 자유, 율법 아래 있는 속박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율법이 폐했다고 계명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사는 방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지 않았을 때 늘 부담이 되고 무거운 의무로 느껴지던 계명을 지키는 일이, 자유 속에서 자연스럽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애 속에 체험하는 것을 말하며, 예수님의 사랑 속에서 죄의 무거운 짐이 벗겨지고 죄의 권세를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의 생애에는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을 온전히 기쁨으로 지키는 역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치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주님과 새 언약을 맺을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마음과 생각 속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주고 기록해 주시기 위해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찾고 계십니다. 거듭난 사람의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새 언약의 경험, 당신은 이 새 언약의 경험을 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 하나님의 계명이 폐했으므로 지킬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가르침과 거짓 평안 속에서 방황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의 경험에 들어간 사람, 그래서 생각 속에 하나님의 법이 있고, 마음 속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그대로 반영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 사람들이 준비되면 하나님을 닮은 그 사람들을 데리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는 새 언약의 경험을 다 하시는 독자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posted by Yaac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