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에 대하여(4) 주는 자와 받는 자
방언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 방언을 주시는 자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방언을 받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장소가 필요할까요? 아니면 어떤 기간을 정해서 기도해야 할까요?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영은 같습니다. 사역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습니다. 일의 결과는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일을 하시는 하나님은 같습니다."코린토 성도들에게(상) 12장 4절~6절에서 은사의 출처를 밝히고 있습니다. 4절에서는 성령을, 5절에서는 예슈아를, 6절에서는 하나님을 은사의 수여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아버지 하나님, 예슈아 마쉬아흐, 성령, 곧 하늘에 계시는 세 분에 의해 서 내려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늘의 세 분께서 은사를 내리시는데 참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사를 성령의 은사라고 주로 말하는 이유는 예슈아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은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를 마쉬아흐인에게 전하는 것은 성령이지만, 하늘의 세 분께서 은사를 내리시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 있음을 안다면, 은사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교인이 다 같은 은사를 받을까요? 코린토 성도들에게 상 12장에서 파울은 교회를 몸의 지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이 팔, 다리, 눈, 코, 귀 등으로 기능이 다른 부분이 서로 합쳐져서 일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처럼, 교회도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참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영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영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영에 의하여 믿음이, 어떤 사람에게는 한 영에 의하여 치유의 은사가,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있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이,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을 분별함이, 어떤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이,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 통역함이 주어집니다."(코린토 성도들에게 상 12장 8절~10절)
파울은 이 말씀을 통하여 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은사를 주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오늘날 마쉬아흐교회가 오해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성령을 받으면 그 결과로 무조건 방언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그 것입니다. 아주 잘못된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신자들은 방언을 거짓으로 만들어 내고, 어떤 이들은 실망하여 교회를 졸업하고 말지요. 그러나 성경은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성령의 은사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파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코린토 성도들에게 상 12장 29절~31절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묻고 있습니다. "모두가 사도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예언자들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교사들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능력 행하는 자들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치유의 은사를 가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방언을 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통역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바로 파울은 모두 다 사도일 수 없고, 모두 다 선지자일 수 없고, 모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을 수 없고, 모두 다 방언을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두 다 방언을 해야 성령의 침례를 받은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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