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 만든 두 사람
지금까지 우리는 페트로와 예후다의 생애를 조명해 보면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하는 죄에 대하여 연구해 보았다. 그 두 죄의 차이는 선택이 만든다. 예후다는 선택할 수 있었다. 그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에 빠지든가, 아니면 죄를 짓더라도 용서를 받으므로 사망에 이르지 않게 되든가 하는 것은 그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여 그의 생애를 반역의 길에서 돌이키든가 자신의 길을 고집하며 계속 반역의 길로 나가는가 하는 것은 예후다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선택은 그의 몫이었다. 마찬가지로 페트로와 같은 생애를 사는가, 아니면 예후다의 삶을 사는가의 차이는 나 자신의 선택이 만든다. 선택은 바로 나의(우리의) 몫이다.
우리의 매일의 삶과 신앙생활은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선택에 의하여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들어질 수 있다. 예후다가 태어나든지 페트로가 태어나든지의 차이는 나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예후다와 페트로 두 사람 중의 어느 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다 있다. 차이는 성령의 호소에 계속 굴복하고 하나님의 편을 택하며 올바른 길로 가는가, 아니면 성령의 음성을 계속 거절하고 자아의 욕심대로 육신의 길을 고집하며 가는가 이다. 많은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이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호소하시지만 강요하시지는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택할 수 있는 힘, 곧 우리의 의지를 사용하여 매일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예후다와 페트로 중 어떤 사람을 내 속에 만들어가는가 하는 것은 바로 이 선택에 달려 있고, 이 선택의 차이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하는 죄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매일 올바른 선택을 하므로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다.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생활이란 어떤 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의 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의지로 사탄의 편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편을 택하는 것, 사탄에게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죄를 승리하는 것이며, 이 일은 우리의 의지의 작용과 선택애 의하여 매일 매 순간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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