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on Church :: 예수 재림 때에 성품이 홀연히 변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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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믿고 가르치며 예슈아 마쉬아흐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
Yaacob
2012. 9. 30. 23:29 외솔/천로역정

예수 재림 때에 성품이 홀연히 변하지 않나요?

대답: 재림 때에 홀연히 변화되는 것은 몸이지 성품이 아닙니다.

많은 기독교인이, "우리는 죄인이라서 죄 가운데 그냥 이렇게 살다가, 재림 때에, 혹은 언젠가홀연히 변화되어 천국에 갈 것이다."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때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 15:5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재림 때에 홀연히 변화되는 것은 성품이 아닙니다. 죽음이나 무덤이나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성품을 변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품을 준비해야 하는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 함께 공부해 봅니다.

 

재림 전에 심판이 있다

심판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습니다. 누가 하늘에 적헙한 성품을 가졌는지 조사하는 심판이 재림 전에 하늘에서 진행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품을 준비해야 하는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성경에는 이 사실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예복의 비유는 재림 전의 심판을 말해준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 22:1,2).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예복의 비유 이야기는 재림 전에 심판이 있다는 중요한 사실에 대해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초청을 보내시고 그 초청에 임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참여하도록 하십니다. 여기서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으로 비유된 분은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속의 계획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비밀이 담긴 복음을 가르치시고, 그 복음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셔서 하늘에 데리고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보내진 세 번의 초청

하나님께서는 인간 구속의 계획의 일환으로 복음의 초청을 인간에게 보내시는데,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초림하셨던 시대부터 세상 끝에 있을 재림 때까지, 세 번에 걸쳐서 복음의 초청을 인류에게 보내십니다. 세 번째 초청은 이방인들을 향하여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때부터 세상을 위한 은혜의 시간이 마쳐지는 순간까지 보내어지는 초청을 말합니다. 두 번에 걸쳐서 보낸 초청이 선택된 민족 유대 백성으로부터 거절당하자, 임금은 마지막으로 이방인들을 향하여 세 번째 복음의 초청장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초청을 받고 찾아온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 속에 "악한 자와 선한 자"가 함께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섞인 무리였습니다. 모두가 이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임금의 말을 순종하는 사람들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은 다만 이기적인 혜택을 얻기 위해서 왕이 초대하는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로서,  왕이 혼인 잔치를 위해 무관심하며,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주어질 보상에 관해서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심판과 조사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1~14).

 

고대 시대의 풍습을 보면, 왕이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청할 때 그 자리에 참석하는 사람이 반드시 입고 와야 하는 예복을 초청장과 함께 보내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이 비유에서도, 임금은 손님들에게 예복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왜 그 예복을 입지 않고 왔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손님들은 왕이 보내어준 예복을 입고 옴으로써, 왕이 자신을 초청해 준 것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시해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임금이 보내준 예복을 입는 대신에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고서 참석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잔치의 참석을 위해, 임금이 요구하는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엄청난 값을 치르고 준비한 예복을 입는 일을 소홀히 하였던 것입니다. 임금이 잔치에 참석한 손님을 심사하는 일은 심판을 표상합니다. 잔치에 모두 참여는 할 수 있지만, 잔치에 참석하여 그 향연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조사하고 심판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이 비유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에서 열리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사람은 재림 때에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누가 하늘에 들어와서 살 수 있는 성품을 갖추었는지를 조사하는 일은 재림 전에 선재합니다. 영생이라는 최후의 보상을 나누어 주기 전에 먼저 누가 의인의 유업을 차지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흰 예복으로 표상된 성품

그렇다면 예복과 성품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요한계시록 19장에는, 하늘 왕의 아들인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신부와 혼인 예식을 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신부는 주님께서 입게 하신 빛나고 깨끗한 흰 예복, 즉 흰 세마포를 입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 19:7,8). 또 다른 성경 번역을 참고해 보면, "이제 그에게 허락하사 정결하고 흰 세마포를 입게 하셨으니 이는 성도들의 의라."(계 19:8  킹 제임스영어성경 역). 성경은 흰 세마포를 "성도들의 의"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곧 세 번째 초청을 받고 하늘 왕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복"을 입고 참석해야만 하는데, 그것은 바로 "성도들의 의"의 옷을 입고 하늘 혼인 잔치에 참석해야 함을 뜻합니다. 그것은 곧 의롭고 선한 성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동기와 생각과 의도와 방향이 의롭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복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들이 소유해야 할 순결하고 흠 없는 품성을 표상합니다.


2)재림 전에 있을 조사심판을 가리키는 성경 구절

지금 예수께서는 하늘 지성소에서 우리의 기도와 죄의 고백과 회개를 받으시며 우리 죄를 중보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중보사업이 마치기 전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시는 동안, 하늘에서는 그 사람이 하늘에 들어와도 안전한 사람인지, 다시는 죄의 반역을 일으키지 않을 하늘에 적합한 성품을 가졌는지 조사하는 심판이 진행됩니다. 이 심판은 인을 치는 과정과 같은 것으로써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기간에 우리의 죄와 허물들을 보여주시며, 우리가 그 죄를 회개하고 그것을 버리도록 하십니다. 그 다음 단계로  또 다른  죄를 보여주시고 그 죄를 알게 하셔서 회개하게 하심으로 정결 사업의 과정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러한 심판 동안, 주님과 하나가 되어 그분의 영혼 정결  사업과 중보사업에 동참하는 자들은 어린 양과 혼인 하는 것으로 성경은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8장 14절의 예언에 나오는  "이천삼백 주야" 예언을 연구해 보면 이 사실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함을 입으리라." 고 다니엘서의 예언을,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은 잘못 해석하여,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땅이 정결하게 되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천삼백 주야"의 예언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라는 요한계시록 14장 7절의 첫째 천사의 복음은, 모두 지성소 안의 예수님의 봉사, 곧 재림 전 심판을 가리키는 것이지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시고 악인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재림하시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는 것은 예수께서 이 땅을 심판하시려 이 땅에 임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임하셨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이 지상에 임하신 것이 아니고,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심판하시는 일을 하시기 위하여 하늘에 있는 지성소에 임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선지자 다니엘은 그분께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 앞에 나아왔다고 표현하고 잇습니다. 다니엘은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단 7:13)라고 기록했는데, 그는 인자 같은 이(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으로 온 것으로 말하지 않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하나님 아버지)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단 7:13)라고 하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역시 이때의 오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 3:1).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 3:2,3) 다니엘서 8장 14절의 기록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성소를 정결케 하려고 지성소에 들어가시는 것과 다니엘서 7장 13절의 "인자 같은 이가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 앞에 나아가시는 것"과 말라기가 예언한 "주님께서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시는 것"등의 세 가지는 모두 같은 사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곧 재림 전에 하늘에서 진행되는 심판을 가리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3)열 처녀 비유 이야기와 혼인 잔치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심판에 대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신랑이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여기에 보면 신랑이 오는 것은 잔치보다 먼저 있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혼인 예식의 풍습을 보면 신랑이 신랑 집에서 먼저 신부와 혼인을 하고 신부 집으로 혼인 잔치(피로연)를 하러 옵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혼인을 마친 신랑이 혼인 잔치를 하기 위해 돌아 올 때의 모습을 이야기해주는 것입니다. 혼인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나라를 받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손님들로 불리고 있습니다.(계 19:9 참조). 손님이 된 사람이 동시에 신부로 대표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 다니엘이 기록한 대로 하늘에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께로부터 "권세와영광과 나라"를 받으실 것인데,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항 것 같은"(단 7:14,. 계 21:2)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을 받으실 것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혼인으로 성경에 표상된 것입니다. 혼인이 끝나면, 곧 그 성안에 살 수 있는 적합한 성품을 가진 성도들이 결정이 되면, 예수께서는 그 예루살렘 성 안에 살 성도들을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사람들은 직접 그 혼인 예식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에 사는 반면에, 그 혼인은 하늘에서 행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눅 12:36)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중보의 일을 끝내시고 그의 나라를 받으시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실 때에,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고, 믿음으로 그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중보의 일을 끝내시고 그의 나라를 받으시기 위하여 하나님 앞으로 들어가실 때,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모든 사람은 다 그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자들로 표상되어 있습니다.


성품은 재림 때에 홀연히 변화되지 않습니다. 성품은 그 전에 준비되어야 합니다. 재림 때에 홀연히 변화되는 것은 육의 몸이 영광스러운 불멸의 몸으로 바뀌는 것이지 성품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품은 지금 준비해야 합니다. 하늘에서 성도가 되고자 하면 우리는 먼저 지상에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동안 간직하고 있던 품성의 특성은, 죽음에 의해서나 부활에 의해서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나타냈던 동일한 성향을 가지고 무덤에서 나올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재림 때에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의 품성을 변화시키지 않으십니다. 변화의 사업은 지금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매일의 생애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고상하고 원만한 품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고상한 품성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를 통하여 개인이 노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능과 정신력을 주시지만, 품성 형성은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품성은 자아와 맹렬하게 싸움으로써 형성됩니다. 타고난 성벽을 끊어 버리기 위하여 거듭거듭 계속해서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단 하나의 좋지 않은 성벽도 고쳐지지 않은 채 남아 있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나는 품성의 결점을 고칠 수 없다."는 말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있다 없다는 것은 의지에 달린 일이며,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예수님께 바칠 때 성품의 변화는 가능한 것입니다.


하늘에 적합한 사람이 되려면, 이 은혜의 시기 동안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품성의 결함들을 회개하고 극복하며, 균형 잡힌 품성을 이루기 위해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귀한 이 유예의 시간, 곧 우리 품성의 옷을 어린양의 피로 씻어 희게 하도록 우리에게 은혜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품성의 흠을 제거하는 데는 필생의 노력이 요구됩니다. 매일 자아를 부인하며 죄를 승리하는 데는 중단 없는 굴복과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께 열렬히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 승리는 가능한 것입니다.

posted by Yaac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