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on Church :: '안식일에 대하여/신약성경과 예배일' 카테고리의 글 목록 (3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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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믿고 가르치며 예슈아 마쉬아흐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
Yaacob

'안식일에 대하여/신약성경과 예배일'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4.08.29 6. 신약의 편지서들이 말하는 안식일

6. 신약의 편지서들이 말하는 안식일

1. 아무 날이나 지키면 된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롬 14:5).  

안식일 폐지론에 골몰하다 보면, 안식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 성경절도 안식일과 관련시켜 아무 날이나 지켜도 된다는 식의 이론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이 성경절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당시 로마에는 유월절파와 요제절파의 대립이 있었고, 유월절파 내에서도 강건파와 온건파 사이에 유월절 양을 먹는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다음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롬 14:6).

 

또 어떤 이들은 “모든 날을 안식일처럼 지내면 되는데 굳이 제칠일(토요일)을 유별나게 지켜야 하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을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신 후에 9절에서 다른 “엿세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10절에서는 “제칠일은 안식일이니(the seventh day is a sabbath)”라고 문법적으로 밝혀 놓았습니다. “제칠일”을 제외한 다른 여섯 날은 힘써 일해야 하는 날들임을 강조했음도 주목해야 합니다.

 

안식일 제도의 기원이 명시된 창세기 2장 2,3절에서는 안식일이라는 명칭 대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고 밝히고,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거듭 확인하고 있어 칠일 중 아무 한 날이 안식일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하필 일곱째이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창 2: 1)셨기 때문입니다.

 

본래 기념일이란 그 날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을 기념하는 시간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어느 부부가 자신들의 결혼기념일을 일 년 중 아무 날로 정하여 기념하겠습니까? 기념일을 옮기거나 아무 날이나 기념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상식에도 어긋납니다. 지구가 존속하는 한 창조가 기념될 것이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통하여 창조에 근거한 경배를 받으실 것입니다.

 

2. ‘매주일 첫날(일요일)’에 헌금(?)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 16:2).

 이것이야말로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일”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문맥을 보면 첫날에 일한 소득을 떼어 놓으라는 권면이므로 오히려 첫날에 일을 했습니다. 또한 헌금이 아니고 예루살렘 교회 신자를 위한 구제헌금을 갑자기 준비하지 말고 매 첫날에 저축해 놓아 내가(바울) 갈 때 차질이 없도록 하라는 말씀이었지 헌금을 교회로 가지와 드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문맥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헬라어 본문에 충실한 여러 번역서도 분명해지는 내용입니다.

 

KJV: “매주 첫날에 너희 각자가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 따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는 모금하는 일이 없게 하라”

현대어 신약: “각 사람은 자기 집에서 한쪽에 따로 두어 저축하게 하라”

새 아메리카 성경: “각 사람은 저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따로 떼어 놓으라”

시라아-페시토역: “각 사람으로 따로 떼어 저축하게 하라”

“홀로 집에서”(루터역), “자신의 집에서”(프랑스역).

 

본문의 뜻이 분명합니다. 요즘처럼 매 일요일 교회에 가서 헌금하라는 뜻이 전혀 없으며, 명목도 일명 정규헌금이 아닙니다. 당시 이방 교회들이 대거 참여했던 예루살렘 모교회(母校會)를 위한 기근구제 의연금(義捐金)이었습니다(롬 15:25~27, 행 24:17). 


 왜 매주일 첫날에 따로 저축하라고 했을까? 이 특별헌금 계획은 “일 년 전에”(고후 8:10)이미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고후 9:5)했는데, 이유는 자신이 갈 때 한꺼번에 힘겨운 헌금을 하려고 하지 말고, 매주일의 수입에서 얼마씩 정기적으로 따로 떼어 집에 저축하므로 넉넉하고 성의 있는 헌금을 드리게 한 것입니다. 

 성공회 성직자들이 편찬하여 캠브리지 대학이 출판한 성경주석도,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매주 첫날에 모였다는 증거를 “이 구절로부터 끌어낼 수 없다”고 지적한 후, 참뜻은 “스스로 저축하라. 즉 공중집회에서 가 아니라… 집에 쌓아두라”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J. J. Lias(ed.), The First Rpistle to the Corinthians, THe Cambridge Bible for schools and Colleges University Press, 164).

 

3.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헛되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10,11). 

‘날(ἡμἐρας)’이란 복수로 되어 있으며 절기안식일이나 금식일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달(μῇνας)’도 복수로 쓰였으며 매달 초하루에 지키는 월삭이나 1월에 추수가 시작되는 아빕월이나 티스리월 등의 달들을 말합니다.
절기(καιροὺ)’  유대인들이 기념하는 연중 절기들을 의미하며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같은 3대 절기 외에도 나팔절, 수전절, 부림절 등이 있습니다.
‘해(ἐνιαυτούς)’는 매 칠 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과(레위기 25:2~7) 오십 년마다 돌아오는 희년(레위기 25:8~55)을 가리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날(ἡμἐρας)’인데, 성경에서 제7일 안식일을 말하면서 ‘날(ἡμἐρας)’을 사용한 일이 없습니다.

 제7일 안식일은 날, 달, 절기, 해가 제정되기 2,500년 전, 즉 창조 때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인류를 위한 축복의 날로 제정된 것이므로 같은 범주에 넣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날’ 자체가 헛된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일요일에 예배드리는 것도 헛된 일이라는 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4. 계명은 폐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 2:15).

여기서 의문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의문(question)인가? 그것은 제사법, 의문(儀文)을 말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더 이상 양을 잡아 제사 드리는 제사법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아담 때부터 시작된 동물의 희생제도는 그의 후손들에 의해서 크게 곡해되고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하여 성소에서 유지되어야 할 예배 형식에 대한 지시를 주게 되었고, 모세는 의식 율법을 책에 기록했습니다. 이 희생제도에 관한 의식 율법을 성경에서는 의문의 율법(ceremonial law)이라고 부르는데 십자가에서 폐지된 율법은 바로 이 율법을 말합니다. 

십계명 외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의식법인 성소 봉사에 관한 지침들과, 백성들을 통제하는 민법을 주셨습니다. 이 율법들은 모세에 의해 책에 기록되었으므로, 모세의 법으로 불립니다. ①민법: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회질서를 위해 필요했습니다. ②의문법: 그리스도가 올 때까지 제사 예식법, ③도덕법: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우리의 본질적인 관계에 토대를 둔 것으로, 그 창시자처럼 변할 수 없습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의식법과 민법과는 달리, 도덕법은 모든 인류를 위해 주어진 것으로 결코 폐지되거나 무효화될 수 없다”(William C. Procter, Moody Bible Institute Monthly(copyrighted), Dec, 1933, p.160).

요한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구약의 희생제사와 성전예배에 관련된 의식들을 포함하는 법을 주께서는 폐하러 오셨다. 그러나 도덕법인 십계명은 폐하지 않으셨다. … 복음의 원수들이 ‘우리 주께서는 계명을 폐하셨다. 오직 한 가지 의무만이 있는데, 그것은 믿는 것이다’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John Wesley, “Upon Our Lord’s Sermon on the Mount”, Discourse 5, in Works, Vol. 5(1829 ed.), pp.311,317).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 순간에도 양을 잡고 있었고 여전히 지금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지요. 그러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성소의 휘장은 찢어졌고 우리는 더 나은 제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동물의 희생제사에 대해 기록한 의문의 율법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인 그리스도의 죽음이 실현될 때까지만 존재하게 돼 있었습니다. 구세주의 죽음은 의문의 율법을 종식했지만, 십계명에 대한 인류의 의무는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요구에 의해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셔야만 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법의 권위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증명하고 있습니다(시 97:2).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심판과 구원이 입맞춤한 곳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비교내용

 

십계명

의문(儀文)의 율법

1.법의 내용

사랑의 도덕률

성소 제도의 의식법

2.별칭

최고의 법(약 2:8)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엡 2:15)

3.기록자

하나님께서 친수로(출 31:18)

모세가 기록(대하 35:12)

4.선포자

하나님께서 직접 선포(신 4:12,13)

모세를 통해 전달(레 1:1~3)

5.기록장소

두 개의 돌비(출 31:8)

책(대하 35:12)

6.보관장소

법궤 안(출 40:20; 히 9:4)

법궤 곁(신 31:24~26)

7.유효기간

영원히 설 것임(시 117:7,8)

십자가에서 폐지(골 2:14)

8.폐지여부

예수께서 폐하지 않음(마 5:17,18)

십자가에서 폐함(엡 2:15)

5. 안식일은 실체가 오면 폐해지는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4-17).

십자가로 안식일은 폐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이 어떤 안식일인가?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의문에 쓴 증서”는 무엇인가? 

위의 본문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이러한 권면이 하필이면 골로새 교회에 주어졌는지 그 배경과 앞뒤 문맥을 아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이 편지를 쓸 당시(A.D 62년경) 소아시아의 골로새교회는 “골로새이단(The Colossian Heresy)”으로 알려진 특별한 이단에 의하여 어려움을 격고 있었습니다. 골로새서에서 발견되는 특별한 표현들 즉 “철학과 헛된 속임수”(2:8),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2:8,20),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2:18), “자의적 숭배와 몸을 괴롭게”(2:23)함 등은 그 이단의 내용을 어느 정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헬라와 페르시아의 이원론에 기초를 두고 동양의 신비 사상을 혼합한 일종의 종교 철학으로 영지주의(Gnosticism)로 불립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 외에도 천사들을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창조와 구원의 중보자로 소개하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성과 성육신을 부인했으며, 또한 십자가로 이루어진 구원을 무시하고 자기 학대와 엄격한 금욕을 실천하여 충만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한편, 할례 등 구약의 의식을 구원의 방편으로 소개하고 자신들이 물려받은 은밀한 영적 지식(gnosis)에 의한 구원을 전파했습니다. 이러한 이단에 맞서 바울은 예수께서 창조주시요, 교회의 머리시며, 유일한 중보이심을 확신시키고 있습니다(골 1:16,18,20).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문맥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는 의문에 쓴 증서는 무엇인가? “증서(χειρὀγραΦον)”라는 말은 성경 전체에서 이곳에 한 번 밖에 쓰이지 않은 특별한 용어인데 “빚 문서”를 가리키는 전문용어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엄청난 죄의 빚 문서들을 도말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제7일 안식일과 절기 안식일 두 종류의 안식일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2:16절의 절기는 레위기 23장에 준수하도록 명시된 유월절, 무교절, 요제절, 오순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 등 일곱 절기를 가리키며, 이 절기들과 연관되어 성회로 모이는 일곱 번의 절기 안식일입니다(무교절의 첫날, 무교절의 마지막 날, 오순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의 첫 날, 초막절의 마지막 날).
“…안식일들에 관해서는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KJV, 골 2:16).“sabbath days”(KJV). “sabbaths”(NKJ, NRS).

 

이 절기에 의미를 준 것은 절기가 지켜지는 정확한 시간에 예정된 구원의 계획을 정확히 성취시키는 예수그리스도를 그림자로 표상하는 제물입니다. 유월절인 1월 14일 해질 때에 잡은 양은 그 시간에 돌아가신 흠 없는 제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냈고, 1월 15일 무교절 안식일을 시작으로 한 주간 먹게 되는 누룩 없는 떡(무교병)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드려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1월 16일 요제절에 바친 처음 익은 곡식 한 단은 유월절 이후 삼일 만에 부활의 첫 열매로 살아나실 그리스도를 놀랍도록 정확히 예표한 것입니다. 그러나 절기안식일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로서 십자가로 폐지되었습니다. 그것들은 표상(type)이고, 실체(antitype)가 오면 사라져야 할 그림자들입니다.

 

창조를 기념하는 제7일 안식일은 죄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죄로 말미암는 구속의 계획이나 십자가와 상관없이 제정되었습니다. 죄가 존재하기 전에 제정된 제도가 십자가로 폐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십계명 중의 한 계명이 십자가의 그림자며, 우리를 거스르고 대적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성경에서 단 한 번도 도덕법인 십계명을 “장래 일의 그림자”로 묘사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장래 일의 그림자”는 무엇이고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같은 내용을 다룬 다른 곳의 평행 절을 찾아 그 대답을 찾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석입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와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이는 황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 10:1,4).

골로새서의 “장래일의 그림자”가 무엇임을 히브리서는 같은 헬라어인 “그림자”(skia) “장래일”(ton rnellonton)을 써서 정확히 설명하고 있는데, 장래일의 그림자인 율법은 장차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던 구약의 제사제도를 말합니다. 그것을 보통 구약(舊約, old covenant)이라고 부르는데, “첫 언약”(first covenant, 히 9:1) 혹은 “첫 것”(히 10:9)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은 갈라디아서 4장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평행절인 갈 4:10,11절과 비교해 봐야 합니다. 이 성경절에 대한 설명은 앞에서 했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습니다. “의문에 쓴 증서를 주님께서는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골 2:14). 그러나 십계명에 내포되어 있고 또 선지자들에 의해 강조되어 온 그 도덕률은 결코 제하여 버리지 않으셨다. 그 도덕률은 의문 혹은 예식의 율례와는 그 근본부터 전혀 다른 바탕에 세워진 것이다. 그 도덕률의 각 부분들은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온 인류에게 더욱 강화되고 존속되어져야 마땅하다”(John Wesley, 2-Vol, Edition, Vol. 1, pp.221,222).

 

6. 주안에 거하는 방법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18,24).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님이 그 안에 거하신다는 약속입니다. 혹시 여기에 넷째 계명은 제외하라고 하셨나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로도 계속 안식일은 지켜졌습니다. 그 나라의 번영과 영광은 저들이 안식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렸었습니다(렘 17:24~27).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 때 저들은 번영하였고, 안식일을 무시하며 존귀히 여기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를 채찍으로 삼아 저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안식일은 거룩하고 존귀한 날로 지켜지도록 요구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회복하고 주의 법도를 따라 바르게 사는 일에 늘 서툴렀고 자주 실패했습니다(겔 22:26). 안식일을 소홀히 하고 저버린 채 살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70여 년의 유랑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정신을 차리고 안식일을 회복하기 시작했으나, 계명의 정신보다는 지극히 형식적이고 율법주의적인 모습으로 안식일을 준수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고 말았지요. 바로 그때에 계명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함과 진실함으로 계명을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7.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계명이 무거우신가요?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 애쓰십니까? 오, 이런…. 문제가 있는 부부관계군요. 속히 회복하십시오.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두 가지 제도를 주신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첫째는 안식일이요, 둘째는 가정제도(창 2:24)입니다. 태초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처럼, 결혼제도 역시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결혼제도가 유대인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요일 2:4)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5:2).

posted by Yaac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