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외과적 효능?
저의 모친께서 아마도 초등학교(지금의 초등학교) 5학년 되던 해 봄에 동네 뒤의 산자락에 있는 보리밭으로 어른들을 따라서 보리를 베러 갔다가 새끼손가락의 마지막 마디를 낫으로 잘라 버리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더니 저의 외조모님께서 "제발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는데도 기를 쓰고 가더니 결국은 사고를 쳤구나. 평생 손가락이 오구라 붙을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니 저의 외조부님께서 말리시면서 애기에게 그런 몹쓸 말을 하느냐고 하시면서 저의 모친을 달래시고 밑의 집에 살고 계시는 외조부님의 집안 동생뻘 되시는 분에게서 석유 병에 넣어둔 큰 지네 한 마리를 얻어 오셔서 상처에 동여매셨다가 몇 시간이 지난 뒤에 벗겨 내시고 하얀 설탕을 상처에 듬뿍 묻힌 후에 헝겊으로 싸매 주셨답니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것으로 갈아 붙이시곤 하시기를 수십 일을 외조부님께서 손수 하셨는데 결국은 완전히 낫고 마지막 마디도 자라나서 지금은 말씀을 안 하시면 모를 정도로 완벽한 손가락이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설탕보다 더 달콤한 아버지의 사랑을 먹고 저의 모친께서는 성장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친께서도 저희 6남매를 설탕이 아니라 꿀보다도 더 달콤한 사랑을 저희들에게 베풀어 주신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은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답니다. 저도 그 사랑을 본받아서 무남독녀 외동딸을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참으로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군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이럴진대 손수 지으시고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신 예호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뿐만 아니라 불순종의 죄로 인해 영원히 죽어야할 처지에 이른 인간들을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도록 허락하신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어떻게 측량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사랑의 예호바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금 이 순간도 주무시지 않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시며 오직 두 팔 벌리시고 "내게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이 간절한 부르심에 진심으로 응답하고 그 품에 안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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