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에 대하여(9) 위조품
예슈아 마쉬아흐는 우리의 모본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한 번도 방언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침례 요한도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람이었으나 그가 방언을 말하였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신약의 27개 책 중에서 3권이 방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약 40여명의 저자로 부터 기록되어졌으나 오직 루카(누가), 마르코(마가), 파울(바울)만이 방언에 대하여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는 곳에 우리의 중요성을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의 감정에만 의지한다면 우리는 진품과 위조품을 구별하지 못하고 헛된 방언을 구하다가 믿음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참다운 방언의 은사는 복음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일에 있어서 강력한 능력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언제나 위조품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Glossolalia"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오순절파 교회들에서 방언의 경험을 말할 때 사용되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American Heritage 사전에 "복잡하고 의미 없는 말, 특별히 무아경 또는 정신질환적 증상과 관련된 현상"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언어"라는 단어는 "인간이 사용하는 목소리, 주로 성문화된 글씨로 나타내는 소리,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구성된 패턴"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방언을 언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글롯소랄리아라는 분열된 소리는 "언어"가 아닙니다.
어떤 교회에서 목사님과 그의 사모가 "방언 팀"을 이루고 있으며, 매주 설교 시간만 되면 목사의 사모가 벌떡 일어서서 그의 손을 하늘로 쳐들고 황홀경에 빠진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사모는 언제나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여 내는 것입니다. "한다 칼라 샤미, 한다 칼리 샤미..."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의심을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예슈아께서 "너희는 기도할 때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반복하지 마라. 참으로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시는 줄로 생각한다."(마타이 6장 7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매번 그 사모가 이러한 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마다 그의 남편인 목사는 설교를 중지하고 한국어로 통역을 하는데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은 그 사모가 계속해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남편인 목사가 통역하는 내용은 매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통역이 부인의 이상한 소리보다 3배 이상 길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왜 처음부터 전체 교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로 주지 않으실까?“ 하고 의아해지곤 합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음 시간에 또다시 더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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